<일상에 지친 당신께 보내는 엘로히스트의 책갈피>


물이 바위를 뚫는 것은


물의 힘이 아니라


물이 바위를 두드린 횟수라는 것을


일지 말자


김수영 저 [오늘, 또 한 걸음] 中



여러분, "미안해요"라는 말... 많이 하세요?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도,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미안해요"라는 말은 참~~ 하기 힘든 말입니다.


나에 대한 겸손과 상대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일어났을때, "미안해요"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죠.


하지만, 미안하다는 고백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가져다 주는데요.


지금부터 하나님의교회에서 알려주는 영혼의 울림... "미안해요"의 효과에 대해서 알아 볼께요~~



가장 어려운 말~ "미안해요"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죠~. 상대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거나, 금전적인 피해를 입히거나,


명예를 더럽히기도 하구요.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손해나 상처를 준 경우도 있어요. 이처럼 다양한 경우에


따라서 사과의 말은 달아지겠지만 '진심'을 담아서 사과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미안해요" 라는 이 말 한마디 꺼내는 것을 어렵게 여긴다는 합니다. 한 박사는 "사람이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누군가 알게 되지 않을까', '이로 인해 어떤 피해가 오지 않을까'하는 우려로 극도의 스


트레스를 겪는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실수를 했을 때 변명하고 핑계를 대는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이죠.



또한 직책과 권위가 높을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사과에 인색하다고 하네요. 이러한 이유를 학자들은 "사과하는 동시에


권위를 잃거나 책임감이 더 막중해진다는 기억이 학습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는 사회적 권위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불필요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는 공포가 사과를 주저하게 만든다는 것이죠.



이처럼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을 낮춰야 하기 때문에 자존심 상하는 문제와도 결부되는데요.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인간관계 전문가들은 가장 어려운 말이 "미안해요"라는 고백의 말이라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어요.



진심을 담아 사과를 하게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하지만,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조국을 대신해 사과하는 모습 [출처:독일총리공식웹사이트]


이는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의 사과에서 잘 나타납니다.



1970년 12월 7일 오전 7시, 폴란드 바르샤바에 부슬비가 내렸습니다. 그 앞에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서 있었죠. 27년


전 나치에 맞서 참살된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를 방문해 추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잠시 고개를 숙인 브란트가 뒤로 


물러서고, 의례적 추모가 끝났다고 여긴 일부 기자들이 따라서 몸을 뒤로 뺐을 때 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빌리 브란트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죠.



사실 그는 나치의 점령에 저항하던 레지스탕스(Resistance)출신으로 사과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라


와 국민을 대신해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습니다. 나치 독일의 잘못을 온몸으로 사죄한 것이었죠.



브란트의 진심 어린 사과는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나치 강제수용소 생존자인 유제프 치란키에비치 폴란드 수상


은 브란트를 끌어 안고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는 않겠다"며 통곡했다고 해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


었던 폴란드는 물론 유대인, 다른 유럽 국가들도 독일 총리의 사과에 감동하여 과거의 독일을 용서했다고 합니다.



이후 독일의 동방정책은 성공했고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는데요. 1971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는 프랑스


대통령에게 "독일보다는 독일 총리를 더 신뢰한다"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신뢰를 기반으로 서독과 소련은


'긴장 완화', '무력 위협 포기', '국경선 존중'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모스크바 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이는 동독과 서독


의 긴장 완화의 기초가 되었고 이후 동,서독은 분단에서 통일로, 유럽은 냉전에서 평화와 협력의 관계고 개선되게 되었


습니다. 한 사람의 진정한 사과가 분쟁의 상흔을 화해의 길로 변환시킨 좋은 사례입니다.



미국 외과의사 다스 굽타(Das Gupta)의 용기있는 사과


2006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병원 종양 외과장인 다스 굽타는 최대 위기를 맞았습니다. 환자의 아홉 번째 갈비뼈에서


떼어 내야 할 조직을 여덟 번째 갈비뼈에서 떼어 낸 것입니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였죠. 그동안 쌓아온 40년의 경력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치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다스 굽타는 환자와 가족에게 "저는 환자분께 큰 해를 끼쳤


습니다.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라며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건냈습니다.



대부분의 의사는 환자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의사가 환자에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시인하기란 매


우 어려운 일입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빠져나갈 변명거리를 찾을 것입니다. 그


러나 굽타 박사는 달랐습니다.



굽타 박사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은 환자 가족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박사가 모든 점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이야기할 때 놀랍게도 모든 분노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환자 가족은 최소 수억 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굽타 박사를 고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굽타 박사를 위로


하는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이 일은 2008년 뉴욕타임즈에 게재되면서 굽타 박사 개인은 물론 병원의 신뢰도까지 높이


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진심이 깃든 사과 한마디는 이토록 강한 힘이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하나님의교회에서 실천하고 있는 '미안해요' 운동은 어떤 것일까요?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누군가 상처를 줄 의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상대방이 상처받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본의 아니


게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은 교회 안에서도 발생하구요. 몇 년 전, 인도에 있는 한 하나님의 교회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식구의 작은 허물로 인해 상처를 받은 한 성도가 있었죠. 마음이 상한 성도는 오랫동안 교회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고


해요. 이를 안타깝게 여긴 교회 사모는 무언가 결심한 듯 상처받은 식구의 집에 방문했습니다. 퉁명스럽게 맞는 식구에게


사모는 몸을 낮추고 식구의 두 손을 꼭 잡고 위로하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미안해요. 그 아픈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저를 용서하세요"



사실 사모가 식구에세 상처를 준 건 아니었습니다. 사모가 사과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교회 식구를 대신


해 무릎 꿇고 진심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사모라는 지위나 체면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저 식구를 하나님의 품으로


다시 인도해 살리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예산치 못한 사모의 사과에 놀란 식구는 사모를 얼싸안고 한참 울었다고 해요. 그리고 마음을 추스른 후에 다음과 같은


말을 건냈다고 합니다.



"고마워요. 상처 받은 내 마음을 보듬으러 먼저 찾아와 주셔서요."



식구는 몸을 낮추고 자신의 손을 잡아 주는 사모에게서 어머니 하나님의 사랑과 따뜻함이 느껴졌다고 덧붙였습니다. 지


금은 상처를 다 씻고, 오해도 풀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새 언약 진리를 지키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초대교회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비유,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를 통해 한 영혼이 얼마나 귀한지 교훈해


주십니다.



-누가복음 15장 3~10절-



상처로 인해 잃어버린 식구를 되살린 것은 어떤 물질이나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진심이 담긴 "미안하다"는 한마디 말이


었죠. 이처럼 사과는 한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픔과 분노를 잠재우고 사랑으로 연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보다 놀라운 일이 또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사랑의 진리, 새 계명과 새 언약은?



-요한복음 13장 34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누가복음 22장 15~20절-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성력 1월 14일 저녁, 이 날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기 전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월절 새 언


약을 베푸시며 죄 사함과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17~28절-



이날 선지자 누가와 요한은 같은 장소에 있었습니다 즉 누가(Luke)가 잔(포도주)을 가지고 새 언약이라고 기록한 장소도


유월절 성만찬을 행하던 곳이엇고, 요한(John)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곧 새 계명이라고 기록한 장소도 유월절 성만찬을


행하던 곳이었습니다. 새 언약은 새 계명이라는 뜻이죠.



-출애굽기 34장 28절-


-신명기 4장 13절-



그렇다면 '유월절'과 '서로 사랑하는 것'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누가복음 22장 8~20절-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유월절의 떡은 예수님의 살을, 유월절의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유월절을 통해 예수님의 살과 피


를 먹은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서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6~17절-


세상에 자기 몸을 미워할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내 안에 흐르고 네 안에 흐르고 있기에 우리가 서로 사랑


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사랑이 지극하신 아버지의 유언입니다.



특별히 주의 깊게 살펴볼 점은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세우시며 이 절기를 당신의 죽으심을 기념할 날로 제정하셨다는 것


입니다. 우리의 사망죄라는 무거운 죗값을 대속하시려 십자가에 당신의 생명을 초개같이 버리셨습니다.



-로마서 5장 7~8절, 6장 23절-



국내외 의학박사, 법의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 형벌이 가장 잔인하고 치욕스러우며 극심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이 따른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일례로 성경은 한 군병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요한복음 19장 34절-



이에 대해 한 병원 원장은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는 것은 극심한 고통 속에 심장이 파열되어 죽었


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심장에는 심낭이라는 것이 있는데 파열된 심장에서는 심낭으로 피가 흘러나오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적혈구가 아래로 내려오면서 위에는 맑은 물이 고이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죄 사함을 위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온 몸으로 감당하신 고난은 단 1초라도 견디기 힘들만큼 처절한 순간


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의 고로움, 아픔, 모욕, 외로움 등을 참으시며 우리를 살리셨고, 마지막 유


언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처럼 가슴 시리도록 사무친 아버지의 유언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은 서로에게 "미안해요", "고마워요" 


라는 따뜻한 말하기 운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과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때부터가 중요하죠. 여기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와 거리가 멀어질 수도, 


가까워질 수도 있습니다. 이를 결정하는 것은 '사과'입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누군가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떠올려 봅시다. 그리고 나로 인해 아파했을 대상이 떠오른다면 용기


있게 다가가 "미안해요", "그때 제 행동을 후회했어요", "얼마나 아프셨어요" 라고 말하며 따뜻하게 손잡아 줍시다. 용기


있는 사과 한마디가 켜켜이 쌓인 오해의 벽을 허물고 용서, 화해, 사랑으로 연합하게 만드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새번역 요한일서 3장 11~16절-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소식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목숨을 버리시면서 우리에게 일깨워 주신 것, 새 언약이 곧 새 계명이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을 간절히 원하고 원하셨던


아버지, 다음날 십자가의 큰 고통을 감내할 것을 각오하시며 '사랑하라'는 유원을 남겨주신 아버지. 


아버지의 그 안타깝고도 애달픈 음성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겨야 겠습니다.



사과할 수 있는 용기, 이는 사랑의 절기인 새 언약 유월절의 도를 실천하는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참고자료>

1. 김호, 정재승, [쿨하게 사과하라], 어크로스(2011)

2. 이남훈, [메신저], 알에이치코리아(2015)

3. 편집부, [예수를 죽여라], 시사인사이드(2015)

4. '빌리 브란트를 기억하다', 중앙일보, 2015.6.1.

하나님의교회에서는 안식일 후 제 삼일에 맞이하는 화요일에 삼일 예배를 지키는데요.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키는 일반 개신교에서는 수요일에 수요 예배를 지키로 있습니다.


왜 이렇게 다른것일까요?


먼저, 지난 2016년에 '조선일보' 기사내용 중 수요 예배에 대한 기사내용이 있어서 먼저 소개해 드릴께요.

 

출처 : 픽사베이 (pixabay)


수요 예배는 성경에 없다?


2016년 2월 19일자 '조선일보'에 수요예배에 대한 기사가 게재된 바 있어요. 문화면 '종교, 아 그래?' 코너에서 


종교전문기자가 쓴 <美. 유럽에 없던 韓 개신교의 발명품>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그것 입니다.




"월~금요일 식당에서 오전 10시~오후10시 근무. 수요일은 오후 8시 퇴근."




기사는 목회자들의 부업 실태 조사 중 한 응답자의 답변으로 시작됐습니다. 2014년 한 신학대 교수가 목회자 900명을


대상으로 부업 실태를 조사했는데, 미자립 교회의 목회자들 가운데 하루 12시간씩 부업을 하면서도 수요일에는 2시간


일찍 퇴근을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수요 예배 때문인데요.



기자는 "수요 예배는 새벽 기도회, 금요 철야 기도회와 함께 한국 개산교만의 특색을 보여주는 예배로, 성경에는 없는


내용"이라며 "삼일 예배"라고도 하는데, 개신교회가 지키는 주일인 일요일 후 삼 일째 되는 날을 계산해 수요일에 지키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어 "개신교계에서는 수요 예배의 기원을 1907년 평양 대부흥이 아닐까 추정하고 잇다"고 밝히며 일본 메이지학원대


종교사 교수의 "주일 예배 후 다시 일주일을 기다르는 게 너무 길게 느껴진 교인들의 열정에 비춰 봐도 일주일의 중간인


수요일 예배가 정착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수요 예배는 개신교 본고장인 유럽이나


미국에도 없던 전통을 한국 개신교계의 열정이 만들어낸 개신교 한류인 셈"이라고 결론 내렸네요.



요지는 '수요 예배는 성경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한국의 개신


교회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것을 100년 넘게 지켜오고 있는 것이죠.



이후 10월 12일, 국민일보는 이에 대해 반박하는 투의 기사를 냈는데요. <수요저녁예배.금요기도회가 개신교 한류?>


라는 제목의 기사로, "수요예배나 금요기도회는 한국 교회의 발명품이 아니라 18세기 이후 영국과 미국 등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던 공적 모임을 우리 형편에 맞게 적용한 것'이라는 반론을 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가르치는 삼일 예배는 언제일까요?



출처 : 픽사베이 (pixabay)


성경이 가르치는 삼일 예배는 안식일로 부터 삼일째 되는날... 화요일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수요 예배는 성경에 없습니다.


국민일보의 반론이 어설픈 변경에 불과한 것은 수요 예배가 한국 교회의 발명품이냐, 서양 교회의 전통이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수요 예배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지가 중요한 문제 아닐까요?



그렇다면 성경은 삼일 예배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성경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에 명시하고 있는데요.


성경에 나타난 일곱째날 안식일은 오늘날 토요일에 해당합니다. 토요일 후 삼 일째 예배를 드린다면 수요일이 아닌


'화요일'에 드려야 하는 것이죠. 화요일에 드리는 삼일 예배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19장 11~13절-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칠일을 부정하리니 그는 제삼일과 제칠일에 이 잿물로 스스로 정결케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제삼일과 제칠일에 스스로 정켤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 누구


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스스로 정켤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쳐질 것은 정켤케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저 있음이니라



이 말씀과 같이 사람의 시체를 만진 사람은 삼 일과 칠 일째 스스로 정켤게 해야 하는데요.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뜻이죠.


이 말씀이 그저 구약 시대의 한 예법 정도로만 치부해서는 않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테 할 수 없느니라



구약의 율법은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참 형상은 지금 우리가 지키는 것이죠. 삼 일과 칠 일에 정켤케


해야 한다는 것은 삼일 예배와 일곱째날 안식일 예배를 통해 영혼이 정결해진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시체에 대한 말씀은


하나님을 영접하지 못한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이죠.



-마태복음 8장 22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죽은 자들이 어찌 죽은 자들의 장례를 치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눈으로 보기에는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아 영혼의 생명을 얻지 못한 자들을 '죽은 자'로 여겼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민수기에 언급한 '사람의 시체'는 세상에 살아가지만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고, 그들과 부비며 살


아가는 우리들은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가 되는 것이죠. 그러니 우리는 삼일과 칠일에 하나님께 나아가 정결함을 받


아야만 하나님의 백성의 대열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일주일 중 어느 하루만 예배를 지켜도 된다면 하나님께서 굳이 삼일과 칠일 이 두 날을 특정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에 드려야 합니다. 공적 모임이야 사람의 형편에 따라 얼마든지 바꿈 수 있지만


예배일은 하나님의 권한이요, 엄중한 명령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 3~9절-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


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이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언제 하나님께 얘배를 올려야 하는지를 알아 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전세계가 서로 다른 종교와 입장으로 헐뜯고 싸우며, 때로는 폭동으로 까지 이어져 인명이 다치는


일도 일어나는 안타까운 현실에 비추어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을 당시 초대교회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되


돌아볼까 합니다.



먼저, 초대교회(Early Church)는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세워주시고 사도들이 다니던 교회입니다. 베드로, 바울, 요한 등


은 그곳에서 영생과 구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은 서로 앞다투어 자신들이 초대교회라 주장하고 있지만, 성경은 아니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초대교회의 진리'가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초대교회는 어떠한 곳일까요?


-사도행전 20장 28~30절-

하나님이 자기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사도 바울은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 에베소에 있는 장로들에게 고별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떠난 뒤에 성도들을 꾀어내는 자, 즉 거짓선지자들이 일어날 것에 대해 염려하며,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올바른


믿음을 지켜나가길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설교 중에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Church of God's blood)를 언급했습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을 신앙


하는 성도들이 다니던 '초대교회'를 지칭한 것인데요. 로마의 압제와 핍박 가운데서도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피로 사신 교회, 즉 하나님의 피로 세우신 교회에서 믿음을 지켜 나갔습니다.



이제, 초대교회의 특징에 대해 알아 볼까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피로 교회를 세우셨느냐는 것이죠. 이 부분에 대해서 공동 번역 성경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공동번역, 사도행전 20장 28절-

여러분은 늘 자신을 살피며 성령께서 맡겨주신 양떼들을 잘 돌보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값을 치르고 얻으신 당신의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성자하나님, 즉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의 값으로 세워진 곳입니다. 당신의 희생의 피로 교회를 세우셨으니,


당연히 그곳은 예수님의 소유인 것이죠. 그렇다면 '예수님의 피'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마태복음 26장 19~28절-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예수께서..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께서 '나의 피'라고 말씀하신 '이것'은 바로 유월절의 포도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력 1월 14일 저녁에 행하신


유월절 성만찬 자리에서 떡이 당신의 몸이며, 포도주가 당신의 피임을 알려주셧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피'로 세


워진 교회라면 '유월절'이라는 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유월절 진리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초대교회의 이름을 알아야 겠죠?

초대교회 당시 예수님의 피로 세우신 교회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요?


-고린도전서 1장 2절-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자들과...


이천 년 전, 그리스 남단에 위치한 고린도(Corinth)라는 지역에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했습니다. 고린도뿐만 아니라


에베소(Ephesus), 갈라디아(Galatia), 빌립보(Philippi)에도 하나님의 교회가 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곳에 다니는


사람들을 가리켜 '성도'라 불렀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세우신 초대교회의 이름은 하나님의 교회였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소아시아 지방 각 도시마다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신 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럽과 아시아로 전파됐기 때문인데요. 바울 또한 유대교에서 하나님의 교회로


개종한 대표적 인물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3절 참조)



오늘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입니다. 유월절의 진리가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피로 세우신 교회라는 의미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을 핍박했던 유대교 사람들에게 교법사 가말리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38~39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하나님의 교회의 정통성은 그 모든 사상과 소행이 하나님께로 나왔기에 절대 변질 될 수도, 흐려질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훼방에도 건재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참으로 특별합니다.


생물학적으로 깊게 생각해 보아도, 어머니 없이는 우리가 태어나지 못하지만, 우리의 일생을


돌이켜 보아도, 어머니의 자리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는데요.


오늘은 창원 하나님의교회에서 열리는 '어머니 글과 사진전'에 대해 소개해 볼까 합니다.


우리에게 특별하지만, 때로는 무관심한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는 우리가 '전부'이며, '모두' 입니다. 늘~~ 자녀생각에 하루 하루는 살아가시는


어머니...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 목사)'가 주최하고 (주)멜기세덱출판사가 주관

하는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이 오는 11월 7일 부터 내년인 2020년 1월 19일까지 창원 중앙역

인근에 있는 하나님의교회에서 열립니다.

하나님의교회는 특설 전시장을 마련하여 '어머니'를 주제로 한 글, 사진, 소품등 159정을 선보인

다고 합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이번 전시회를 교회 성도들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민들에게도 개방

한다고 하는데요. 관람시간은 오전 10시 부터 저녁 8시까지입니다.

지인,친구들과 함께 가도 좋구요. 부모님과 함께 가면, 부모님의 어머니를 추억하는 좋은 시간이

될듯 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별자리 이야기를 해 볼까 해요~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계시죠~, 이는 우주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 말의 의미를


절실히 느끼게 되는데요. 너무도 크고, 깊고, 도무지 그 끝을 알 수 없기에, 그 속에서 하나의 점에 불과한 인간의 눈은


우주의 전부를 담을 수 없답니다. 그래서 인류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우주라는 공간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오류


들을 범해왔는데요. 그중 하나가 별에 관한 것입니다.


떨기별 묘성 ( The Pleiades )



겨울철 남쪽 하늘에서 볼 수 있는 황소자리중에 '플레아데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성단이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이를


'묘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묘성은 일곱 개의 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서양에서는 ' 7자매


별'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1609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리레이가 망원경을 만들어 천체를 관측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묘성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는데요. 일곱 개가 전부일 것이라 생각했던 이 별들이 실제로는 2천 개가 넘는 수 많은 별들로


이루어진 별의 무리, 즉 성단이엇던 것입니다.


게다가 성단을 구성하는 별들은 각각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포도송이에 여러 개의 알갱이가 붙어 있듯, 인력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죠. 이러한 성단을 '개방성단 (혹은 산개성단)' , 또는 '떨기별'이라고 합니다.


오리온의 풀린 허리띠, 삼태성 ( Orion )



겨울철 별자리 중 하나인 오리온자리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사냥꾼 오리온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오리온의


허리띠 부분에는 세 개의 별이 나란히 위치하고 있는데요. 이 세 개의 별 (Orion's belt)은 삼성, 또는 삼태성이라고도


불리는데,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이 삼태성이 평면상에 나란히 존재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면서 우주를 정밀하게 관측해본 결과, 마치 허리띠처럼 일직선상에 놓여 있는 듯 보였던 삼태성


이 우주공간의 옆쪽에서 보면 서로 아무 관계없이 뚝뚝 떨어져 있는 별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결국 삼태성은


풀려 있는 허리띠였던 것입니다. 묘성의 사례와도 같이, 이 역시 '전부'를 볼 수 없는 인간의 한계에서 비롯된 오류인


셈입니다.


천문학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우주 세계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인간은 과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했습니다. 망원경을


비롯한 천체 관측 기구들을 사용하여 인간은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우주의 비밀들을 한 겹 한 겹 벗겨낼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렇다면 망원경이 발명되기 전, 정밀한 천체 관측이 불가능했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 원시 사회를 겨우 탈피하기 시작했고, 농경, 목축, 수렵이 생활의 전부였던 청동기 시대. 누군가가 쓴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놀랍게도 현대 과학자들이나 증명할 수 있을 법한 우주의 진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책이 바로


성경의 '욥기'입니다.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야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욥기 38장 31절)



3500여 년 전 기록된 성경 '욥기'에 등장하는 한 구절입니다. '너(사람)'는 묘성을 매어 떨기가 되게 하거나 삼성의 띠를


풀 수 없지만 '나(하나님)'는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묘성 그리고 삼태성에 대한 기록이죠. 묘성이 수많


은 별들로 이루어진 떨기별이라는 사실과 오리온자리의 삼성(삼태성)이 풀려 있는 별이라는 사실을 이렇듯 성경은 정확


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망원경이라는 도구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그 시대에 너무나도 간결한 한 문장으로 천문학적


사실을 정확하게 묘사했던 것입니다.



'너희들은 할 수 없지만, 나는 할 수 있다.'



우주라는 세계를 직접 만들고 설계한 창조자가 아니고서야, 어느 누가 감히 이렇게 단언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수 천년


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겨우 찾아낸 진실의 한 조각을 태초부터 꿰뚫어 보신 창조주, 그가 바로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


이십니다.


<참고자료>

1. '묘성', 라이프성경사전

2. '성서에 나타난 천문학적인 통찰 : 묘성과 삼성', 한국창조과학회




오늘은 하나님의교회에서 알려주는 초막절에 대해서 알아 보게요~


초막절은 추수절의 끝 절기며 일 년 중 마지막 절기로 성력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지켜졌습니다 (레위기 23장 34~36절). 초막절은 구약시대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에 와서도 초림 예수님께서 지키셨고 사도들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지켰던 절기입니다. 마지막 시대에도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의 가르침을 받은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1년 중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초막절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안상홍님께서는 성경의 예언을 따라 오셔서 무너진 시온을 건설해 주시고 모든 절기를 복구시켜 주셨습니다.



초막절의 유래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을 받아서 내려오던 날부터 모든 백성에게 언약의 말씀과 성막 지을 문제를 다 설명한 후에(출애굽기 34장 27~35절) 그달 15일부터 7일간 성막 지을 재료인 금, 은, 포목, 목재 등을 자원하는 사람들이 넘치도록 풍성하게 드려 성막을 짓게 하였습니다(출애굽기 35장 4~29절, 36장 5~7절). 여호와께서 이 성막 지을 재료를 제조하여 바친 그 7일간을 기념하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말미암아 대대로 이날을 기억하게 하시려고 초막절을 정하여 지키게 하셧습니다.

이 초막절을 장막절, 또는 구려절이라고도 합니다(구역 성경 참고).


초막절의 의식


이스라엘 백성은 초막절을 지킬 때마다 장막 짓는 형식을 행하여 초막을 짓기도 하고 종려나무나 화석류 나무나 산버드나무를 취하여 성전 마당에나 집 위에 깔고, 덮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주일간 거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빈곤한 가정은 서로 도와주기도 하며 절기를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느혜미야 8장 9~18절, 레위기 23장 39~43절, 신명기 16장 11~15절, 스가랴 14장 15~18절).



초막절의 예언 성취


성경에는 사람을 나무로 표상하기도 하고(예레미야 5장 14절), 거룩한 성도들을 성전 재료로 표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2절). 이와 같이 풀이나 나무로 즐거워했던 의식이나, 모세를 통하여 일주일 동안 성전 재료를 풍성히 모음으로써 거룩한 성막을 완성했던 지난날의 역사는, 나무로 표상되고 성전 재료로 표상된 14만 4천 성도들이 모이게 됨으로써 완성될 지상 복음사업에 대한 예언입니다. 우리는 이 절기에 전도대회를 열어, 성막 재료를 모음과 같이 성전 재료인 성도들을 모음으로써 예수 강림운동의 기초를 잡아야 할 것입니다.


초막절의 약속


초막절은 하늘 예루살렘 성전의 재료인 14만 4천 성도들을 모으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인 성령을 허락 받는 기쁨의 날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러한 사실들을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스가랴 14장 16~19절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여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본문 내용 속에서는 초막절을 지커러 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성령)를 내리지 않겠다고 분명히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초막절을 지키러 오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것이며, 그들은 벌을 받게 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초막절을 지키지도 않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다] ,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고 말하는 것은 전혀 성경에 없는 거짓된 사단의 속임이요, 허탄한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초막절 지키는 백성에게 내려주기로 약속하셨고 예수님께서도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7장 37~39절


"명절(초막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스가랴 선지자는 초막절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않겠다고 설명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초막절을 지킴으로써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ㅏㄷ. 두 내용의 말씀을 비교해 보면 스가랴서에 나타난 초막절에 내리는 비는 곧 초막절에 허락하실 성령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위의 말씀으로 볼 때 성령은 분명히 오순절 절기나 초막절 절기를 지키는 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은혜이며 뜻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초막절을 지키지도 않는 사람들이 성령 받았다는 것은 어떤 신(神)의 역사일까요? 성령의 역사일까요. 악령의 역사일까요? 하나님은 결코 헛된 말씀을 아니 하시는 분입니다. 초막절 지키는 백성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면 초막절 지키지 않는 백성에게 어찌 성령을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분명코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의 역사입니다. 옛날 바리새 교인들은 메시야가 오실 줄을 알면서도 그를 영접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와 같이 오늘날 많은 성경학자는 늦은 비 성령이 내릴 줄은 알면서도 성령 받을 진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8장 7절, 3장 3절).



오늘은 하나님의교회에서 알려주는 대속죄일에 대해서 알아 보게요~ 

(대)속죄일은 성력 7월 10일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1년 동안 지은 죄를 용서받는 날입니다(레위기 23장 27절). 오늘날 우리도 1년 동안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속죄일을 지며야만 합니다. (대)속죄일을 지키지 않고서는 죄를 사함 받았다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의 가르침에 따라 (대)속죄일을 기념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대)속죄일은 하나님의 자녀가 1년 동안 지은 죄를 사단, 마귀에게 넘기는 날이기 때문에 사단,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대)속죄일을 지키지 못하게 안간힘을 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만 허락하신 절기를 지키지 못하게 하는 자들의 정체를 밝히 알야야 할 것입니다.



대속죄일의 유래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해방된 이후 40년간 광야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백성을 다스려 나가는 일에 필요한 율법을 주시고자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셨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40일 동안 금식을 한 뒤에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해 주신 십계명을 받아 들고 하산(下山)하였습니다. 그러나 산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40일 동안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필시 그가 죽었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지도자를 잃었다고 생각한 그들은 자신들을 가나안 땅까지 인도할 신(神)을 만들자고 제안하게 되었고, 마침내 만들어진 금송아지 주위에서 먹고 마시고 뛰면서 음란히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시내산에서 내려오던 모세는 너무나 놀랍고 어처구니없는 이 광경에 크게 지노하여 양손에 들고 있던 십계명의 돌비를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음란히 섬기던 금송아지 우상을 불태워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서 마시우게 했고, 그 날에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칼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행위를 크게 뉘우쳐 회개하기에 이르렀고, 그 회개의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두 번째 십계명을 허락하셨습니다. 깨뜨려진 십계명을 새로이 허락 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속죄(贖罪)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그 두 번째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오던 그 날이 매년 기념하고 있는 (대)속죄일 절기입니다(출애굽기 32장 1~35절).



대속죄일의 의식

1) 아사셀 염소는 사단의 표상물

구약시대의 대속죄일 의식을 살펴보면 제사장들의 죄 사함을 위해서는 수송아지를 제물로 삼았고, 백성의 속죄를 위해서는 염소가 제물로 사용되었습니다. (대)속죄일에 사용될 두 마리의 염소는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 채 제비에 뽑히게 됩니다. 그 중 한 염소는 하나님을 위하여 바침이 될 속죄제 제물이 되고 또 다른 한 염소는 아사셀을 위한 제물이 되며 그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광야 무인지경을 헤매다가 죽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곧 평시에 범한 백성의 죄가 성소로 임시 옮겨졌다가 (대)속죄일을 통하여 아사셀 수염소에게 그 죄를 안수하여 광야 무인지경으로 보내어 죽게 하는 일인데, 평시에 범한 우리들의 죄가 성소로 표상되신 그리스도에게로 임시 옮겨져 있다가 그것이 유월절이나 대속죄일 같은 절기를 통하여 사단 마귀에게 옮겨짐으로 사단은 최종적으로 죄를 짊어진 채 광야 무인지경 같은 무저갱 속에서 고난 받으며 최후에는 멸망하게 될 것을 (대)속죄일 절기를 통해서 그 이치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레위기 16장 6~22절).


2)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는 날


히브리서 9장 7절

"오직 둘째 장막(지성소)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대속죄일의 예언과 예언 성취

1) 예언

백성의 죄 -> 성소로 죄가 옮겨짐 -> (대)속죄일에 아사셀 수염소에게로 죄가 넘겨짐 -> 아사셀 수염소는 죄를 최종적으로 짊어지고 광야에서 고난 받다가 죽게 됩니다.


2) 예언 성취

우리의 죄 -> 그리스도께서 죄를 담당해 주심 -> (대)속죄일에 아사셀 염소에 비유된 사단에게 죄를 최종적으로 넘겨줌 -> 마귀는 지옥에서 고난 받다가 영원히 멸망 받게 됩니다.



다음에는 하나님의교회에서 알려주는 가을절기中 '초막절'에 대하여 알아 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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