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지친 당신께 보내는 엘로히스트의 책갈피>



힘내.


너의 힘들었던 시간들이


행복이라는 열쇠를 중 테니.


전승환 저 [나에게 고맙다] 中



<일상에 지친 당신께 보내는 엘로히스트의 책갈피>


물이 바위를 뚫는 것은


물의 힘이 아니라


물이 바위를 두드린 횟수라는 것을


일지 말자


김수영 저 [오늘, 또 한 걸음] 中



여러분, "미안해요"라는 말... 많이 하세요?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도,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미안해요"라는 말은 참~~ 하기 힘든 말입니다.


나에 대한 겸손과 상대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일어났을때, "미안해요"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죠.


하지만, 미안하다는 고백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가져다 주는데요.


지금부터 하나님의교회에서 알려주는 영혼의 울림... "미안해요"의 효과에 대해서 알아 볼께요~~



가장 어려운 말~ "미안해요"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죠~. 상대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거나, 금전적인 피해를 입히거나,


명예를 더럽히기도 하구요.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손해나 상처를 준 경우도 있어요. 이처럼 다양한 경우에


따라서 사과의 말은 달아지겠지만 '진심'을 담아서 사과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미안해요" 라는 이 말 한마디 꺼내는 것을 어렵게 여긴다는 합니다. 한 박사는 "사람이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누군가 알게 되지 않을까', '이로 인해 어떤 피해가 오지 않을까'하는 우려로 극도의 스


트레스를 겪는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실수를 했을 때 변명하고 핑계를 대는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이죠.



또한 직책과 권위가 높을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사과에 인색하다고 하네요. 이러한 이유를 학자들은 "사과하는 동시에


권위를 잃거나 책임감이 더 막중해진다는 기억이 학습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는 사회적 권위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불필요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는 공포가 사과를 주저하게 만든다는 것이죠.



이처럼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을 낮춰야 하기 때문에 자존심 상하는 문제와도 결부되는데요.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인간관계 전문가들은 가장 어려운 말이 "미안해요"라는 고백의 말이라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어요.



진심을 담아 사과를 하게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하지만,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조국을 대신해 사과하는 모습 [출처:독일총리공식웹사이트]


이는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의 사과에서 잘 나타납니다.



1970년 12월 7일 오전 7시, 폴란드 바르샤바에 부슬비가 내렸습니다. 그 앞에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서 있었죠. 27년


전 나치에 맞서 참살된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를 방문해 추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잠시 고개를 숙인 브란트가 뒤로 


물러서고, 의례적 추모가 끝났다고 여긴 일부 기자들이 따라서 몸을 뒤로 뺐을 때 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빌리 브란트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죠.



사실 그는 나치의 점령에 저항하던 레지스탕스(Resistance)출신으로 사과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라


와 국민을 대신해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습니다. 나치 독일의 잘못을 온몸으로 사죄한 것이었죠.



브란트의 진심 어린 사과는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나치 강제수용소 생존자인 유제프 치란키에비치 폴란드 수상


은 브란트를 끌어 안고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는 않겠다"며 통곡했다고 해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


었던 폴란드는 물론 유대인, 다른 유럽 국가들도 독일 총리의 사과에 감동하여 과거의 독일을 용서했다고 합니다.



이후 독일의 동방정책은 성공했고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는데요. 1971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는 프랑스


대통령에게 "독일보다는 독일 총리를 더 신뢰한다"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신뢰를 기반으로 서독과 소련은


'긴장 완화', '무력 위협 포기', '국경선 존중'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모스크바 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이는 동독과 서독


의 긴장 완화의 기초가 되었고 이후 동,서독은 분단에서 통일로, 유럽은 냉전에서 평화와 협력의 관계고 개선되게 되었


습니다. 한 사람의 진정한 사과가 분쟁의 상흔을 화해의 길로 변환시킨 좋은 사례입니다.



미국 외과의사 다스 굽타(Das Gupta)의 용기있는 사과


2006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병원 종양 외과장인 다스 굽타는 최대 위기를 맞았습니다. 환자의 아홉 번째 갈비뼈에서


떼어 내야 할 조직을 여덟 번째 갈비뼈에서 떼어 낸 것입니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였죠. 그동안 쌓아온 40년의 경력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치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다스 굽타는 환자와 가족에게 "저는 환자분께 큰 해를 끼쳤


습니다.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라며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건냈습니다.



대부분의 의사는 환자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의사가 환자에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시인하기란 매


우 어려운 일입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빠져나갈 변명거리를 찾을 것입니다. 그


러나 굽타 박사는 달랐습니다.



굽타 박사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은 환자 가족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박사가 모든 점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이야기할 때 놀랍게도 모든 분노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환자 가족은 최소 수억 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굽타 박사를 고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굽타 박사를 위로


하는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이 일은 2008년 뉴욕타임즈에 게재되면서 굽타 박사 개인은 물론 병원의 신뢰도까지 높이


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진심이 깃든 사과 한마디는 이토록 강한 힘이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하나님의교회에서 실천하고 있는 '미안해요' 운동은 어떤 것일까요?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누군가 상처를 줄 의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상대방이 상처받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본의 아니


게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은 교회 안에서도 발생하구요. 몇 년 전, 인도에 있는 한 하나님의 교회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식구의 작은 허물로 인해 상처를 받은 한 성도가 있었죠. 마음이 상한 성도는 오랫동안 교회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고


해요. 이를 안타깝게 여긴 교회 사모는 무언가 결심한 듯 상처받은 식구의 집에 방문했습니다. 퉁명스럽게 맞는 식구에게


사모는 몸을 낮추고 식구의 두 손을 꼭 잡고 위로하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미안해요. 그 아픈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저를 용서하세요"



사실 사모가 식구에세 상처를 준 건 아니었습니다. 사모가 사과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교회 식구를 대신


해 무릎 꿇고 진심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사모라는 지위나 체면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저 식구를 하나님의 품으로


다시 인도해 살리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예산치 못한 사모의 사과에 놀란 식구는 사모를 얼싸안고 한참 울었다고 해요. 그리고 마음을 추스른 후에 다음과 같은


말을 건냈다고 합니다.



"고마워요. 상처 받은 내 마음을 보듬으러 먼저 찾아와 주셔서요."



식구는 몸을 낮추고 자신의 손을 잡아 주는 사모에게서 어머니 하나님의 사랑과 따뜻함이 느껴졌다고 덧붙였습니다. 지


금은 상처를 다 씻고, 오해도 풀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새 언약 진리를 지키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초대교회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비유,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를 통해 한 영혼이 얼마나 귀한지 교훈해


주십니다.



-누가복음 15장 3~10절-



상처로 인해 잃어버린 식구를 되살린 것은 어떤 물질이나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진심이 담긴 "미안하다"는 한마디 말이


었죠. 이처럼 사과는 한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픔과 분노를 잠재우고 사랑으로 연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보다 놀라운 일이 또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사랑의 진리, 새 계명과 새 언약은?



-요한복음 13장 34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누가복음 22장 15~20절-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성력 1월 14일 저녁, 이 날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기 전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월절 새 언


약을 베푸시며 죄 사함과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17~28절-



이날 선지자 누가와 요한은 같은 장소에 있었습니다 즉 누가(Luke)가 잔(포도주)을 가지고 새 언약이라고 기록한 장소도


유월절 성만찬을 행하던 곳이엇고, 요한(John)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곧 새 계명이라고 기록한 장소도 유월절 성만찬을


행하던 곳이었습니다. 새 언약은 새 계명이라는 뜻이죠.



-출애굽기 34장 28절-


-신명기 4장 13절-



그렇다면 '유월절'과 '서로 사랑하는 것'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누가복음 22장 8~20절-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유월절의 떡은 예수님의 살을, 유월절의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유월절을 통해 예수님의 살과 피


를 먹은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서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6~17절-


세상에 자기 몸을 미워할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내 안에 흐르고 네 안에 흐르고 있기에 우리가 서로 사랑


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사랑이 지극하신 아버지의 유언입니다.



특별히 주의 깊게 살펴볼 점은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세우시며 이 절기를 당신의 죽으심을 기념할 날로 제정하셨다는 것


입니다. 우리의 사망죄라는 무거운 죗값을 대속하시려 십자가에 당신의 생명을 초개같이 버리셨습니다.



-로마서 5장 7~8절, 6장 23절-



국내외 의학박사, 법의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 형벌이 가장 잔인하고 치욕스러우며 극심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이 따른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일례로 성경은 한 군병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요한복음 19장 34절-



이에 대해 한 병원 원장은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는 것은 극심한 고통 속에 심장이 파열되어 죽었


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심장에는 심낭이라는 것이 있는데 파열된 심장에서는 심낭으로 피가 흘러나오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적혈구가 아래로 내려오면서 위에는 맑은 물이 고이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죄 사함을 위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온 몸으로 감당하신 고난은 단 1초라도 견디기 힘들만큼 처절한 순간


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의 고로움, 아픔, 모욕, 외로움 등을 참으시며 우리를 살리셨고, 마지막 유


언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처럼 가슴 시리도록 사무친 아버지의 유언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은 서로에게 "미안해요", "고마워요" 


라는 따뜻한 말하기 운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과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때부터가 중요하죠. 여기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와 거리가 멀어질 수도, 


가까워질 수도 있습니다. 이를 결정하는 것은 '사과'입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누군가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떠올려 봅시다. 그리고 나로 인해 아파했을 대상이 떠오른다면 용기


있게 다가가 "미안해요", "그때 제 행동을 후회했어요", "얼마나 아프셨어요" 라고 말하며 따뜻하게 손잡아 줍시다. 용기


있는 사과 한마디가 켜켜이 쌓인 오해의 벽을 허물고 용서, 화해, 사랑으로 연합하게 만드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새번역 요한일서 3장 11~16절-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소식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목숨을 버리시면서 우리에게 일깨워 주신 것, 새 언약이 곧 새 계명이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을 간절히 원하고 원하셨던


아버지, 다음날 십자가의 큰 고통을 감내할 것을 각오하시며 '사랑하라'는 유원을 남겨주신 아버지. 


아버지의 그 안타깝고도 애달픈 음성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겨야 겠습니다.



사과할 수 있는 용기, 이는 사랑의 절기인 새 언약 유월절의 도를 실천하는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참고자료>

1. 김호, 정재승, [쿨하게 사과하라], 어크로스(2011)

2. 이남훈, [메신저], 알에이치코리아(2015)

3. 편집부, [예수를 죽여라], 시사인사이드(2015)

4. '빌리 브란트를 기억하다', 중앙일보, 2015.6.1.

우리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참으로 특별합니다.


생물학적으로 깊게 생각해 보아도, 어머니 없이는 우리가 태어나지 못하지만, 우리의 일생을


돌이켜 보아도, 어머니의 자리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는데요.


오늘은 창원 하나님의교회에서 열리는 '어머니 글과 사진전'에 대해 소개해 볼까 합니다.


우리에게 특별하지만, 때로는 무관심한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는 우리가 '전부'이며, '모두' 입니다. 늘~~ 자녀생각에 하루 하루는 살아가시는


어머니...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 목사)'가 주최하고 (주)멜기세덱출판사가 주관

하는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이 오는 11월 7일 부터 내년인 2020년 1월 19일까지 창원 중앙역

인근에 있는 하나님의교회에서 열립니다.

하나님의교회는 특설 전시장을 마련하여 '어머니'를 주제로 한 글, 사진, 소품등 159정을 선보인

다고 합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이번 전시회를 교회 성도들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민들에게도 개방

한다고 하는데요. 관람시간은 오전 10시 부터 저녁 8시까지입니다.

지인,친구들과 함께 가도 좋구요. 부모님과 함께 가면, 부모님의 어머니를 추억하는 좋은 시간이

될듯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교회에 다니는 신앙인으로서 경계해야할 사기꾼에 대해 얘기해 보게요~



아서 퍼거슨 이라는 희대의 사기꾼에 대해 들어 보셨나요?


조선시대 인물로 소설속에 등장하는 '봉이 김선달'은 다들 아시죠? 영국의 버킹엄궁전, 프랑스의 에펠탑, 미국의 백


악관과 자유의 여신상,,,,,   이 모두가 각 나라를 대표하는 유명한 건축물이기에 한번쯤 들어 봤을 꺼예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마치 개인의 소유인 양 팔아 버린 한 남자가 있습니다. 바로 스코틀랜드 출신의 '아서 퍼거슨


(Arthur Furguson)'이 그 주인공입니다. 



1920년 어느 날, 프랑스를 여행하던 아서 퍼거슨의 눈에 파리의 에펠탑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관광객들을


보며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바로 에펠탑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퍼거슨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접근하여,


에펠탑의 주인이라고 속인 그는 재정이 어려워져 급하게 에펠탑을 매각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원래 천만 달러인데


단돈 십만 달러에 주겠다며 선심 쓰듯 얘기합니다. 놀랍게도 그렇게 거래가 성사되게 됍니다.



프랑스에서의 사기 행각이 매우 쉽게 성공하게 되자 퍼거슨은 영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사기 계획을 세우게 되는


데요.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버킹엄궁정이었습니다. 당시 궁전에는 영국의 국왕이었던 조지 5세의 가족들이 살고 있


었습니다. 



퍼거슨은 버킹엄궁전을 구경하고 있던 미국인에게 접근하여 자신은 영국 정부의 비밀 요원이며 영국의 막대한 부채를


갚기 위해 버킹엄궁전을 팔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말합니다. 단 버킹엄궁전을 아무에게나 팔 수 없으니, 심사를 거쳐


자격이 있는지를 알아봐야 한다는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여 손쉽게 상대로부터 계약금 2천 파운드를 받습니다. 현재 가


치로 2억원이 넘는 금액입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여러 명의 관광객에게 버킹엄궁전을 팔아 치웁니다.



1925년, 퍼거슨은 무대를 미국으로 옮기게 되는데요. 첫 번째 물건은 대통령의 관서인 백악관이었습니다. 도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판매가 불가능 할 것이라 판단한 그는 새로운 판매대상을 물색하게 되는데요. 도시물정에 어두운 시골의


대지주들이었습니다. 결국 텍사스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농부가 99년간 백악관을 대여하는 특권(?)을 누리게 되는데요.


이 계약으로 퍼거슨은 47억 원이나 되는 돈을 거머쥐었습니다.



퍼거슨은 은퇴 기념으로 마지막 사기 계획을 준비하는데요. 바로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었습니다. 그의 사기 행각


의 피해자는 호주에서 온 부유한 관광객이었습니다. 뉴욕이 항만 공사를 계획 중인데 자유의 여신상이 공사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말을 미끼로 던졌지만, 관광객은 퍼거슨을 의심했고, 며칠 뒤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가지고 경찰서에 들어


가고, 결국 퍼거슨의 사기행각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누구나 자신은 사기꾼에게 절대로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퍼거슨 보다 더 악명 높은 사기꾼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직도 경찰에 잡히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그


의 정체조차 가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연 누구일까요?



먼저 외형을 살펴 볼까요?



그녀가 마음껏 사치와 영화를 누렸으니 그만큼 고통과 슬픔으로 갚아 주어라... 비참하다! 비참하다! 거대한


도시 바벨론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순식간에 닥쳤구나! .. 그 상품은 금,은,보석,진주... 소, 양, 말, 수레, 종과


사람의 영혼이다 


(현대인의 성경, 요한계시록 18장 7~13절)



바벨론이라 이름한 그녀는 하나님의 소유물을 마음대로 거래하며 엄청난 부를 축척했다고 합니다. 눈여겨


볼 점은 그녀가 '사람의 영혼'까지 거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여자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베드로전서 5장 13절). 금,은,보석,진주 등으로 교회를 화려하게 꾸미고, 자줏빛과


붉은색 옷을 입고, 손에 금잔을 가지고 예배하는 교회, 바로 로마 가릭 입니다.



그럼 그들의 특징을 한번 볼까요?


하나님의 법을 변경한 가릭(상해 천주교 요리(중)에 소개되어 있는 십계명)



B.C. 536년경 선지자 다니엘(Daniel)은 장차 적그리스도가 등장해 하나님의 법을 변경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힐 것


이라 예언하였습니다 (다니엘 7장 25절). 공교롭게도 이 예언을 모두 성취한 단체는 로마 가톨릭입니다.



[성서 핸드북]에 따르면 로마 가톨릭교회는 하나님의 대리자를 자처하며 5천만 명이나 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무참히


학살했었습니다. 제264대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를 인정하듯 가톨릭이 수세기에 걸쳐 반인권적 범죄들을 자행했


다고 말하기도 했었죠. 또한 종교의 이름으로 교황의 영향력 확대, 돈벌이, 일확천금에 대한 야망 등 불손한 동기가 숨어


있었다고 시인하기도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변경한 단체도 로마 가톨릭입니다. A.D. 321년에는 안식일을, 325년에는 유월절 등의 새 언약 진리들을


폐지하고 태양신의 성일인 일요일 예배를 도입했습니다. 가톨릭출판사 [억만인의 신앙]에 따르면 일요일 예배는 하나님


의 법이 아닌 가톨릭교회의 권위로 만들어진 것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5세기에 이르러는 십계명까지 변경해


버리고 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법을 바꾼 로마 가톨릭교회를 가리켜 '심판 받을 바벨론'이자 '적그리스도'단체라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요한계시록 18장 2~6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하나님의 법을 바꾼, 로마 가톨릭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십니다. 사도 요


한은 그 곳에서 신앙하는 사람들에게 나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대필했습니다. 희대의 사기꾼 아서 퍼거슨


이 경찰서에 연행됐듯이, 말일에는 영혼을 거래하는 기상천외한 장사꾼이자 사기꾼의 막도 내리게 될 것입니다.



<참고자료>

'버킹엄궁전, 백악관을 판 희대 사기꾼 '아서 퍼거슨", 엑스포뉴스, 2011.11.6.



오늘은 신앙의 양심에 대해서 한 번 얘기해 보게요~




양심저울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공정한 상거래를 위해 소비자가 직접 무게를 측정하고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 저울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청자의 불만거리를 찾아 고발하는 형식의 TV 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가 바로 곡류, 육류 


등의 가게에서 물건의 중량을 속여서 파는 것을 고발 형식으로 방영하는 것입니다. 이는 중량에 따라 돈을 지불해야


하는 소비자들에게는 무척이나 민감한 문제일 수 밖에 없는데요. 한 번이라도 속아서 물건을 구입한 소비자들은 자신이


속았다는 불쾌감과 함께 그 가게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갖게 되어서 소비자로 하여금 원활한 소비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순간의 차액을 노려서 비양심적인 형태로 판매를 한 업주들은 이득을 보는 듯하지만, 결국 소비자들의


외면에 손실과 영업 중단이라는 비참한 결과를 맞기도 합니다.



이러한 결과가 결국은 양심적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업주들에게까지 피해가 간다는 것입니다. 양심적으로 판매를 해온


업주들의 입장에서는 소비자와의 신뢰 회복을 위한 방책을 강구하게 되고, 이어서 기막힌 해결책을 찾게 되는데요.


그것이 바로 '양심저울' 입니다. 실제로 송파구에 있는 한 대형 상가와 도매시장에서는 입구부터 '양심저울'을 설치해


주민들과 방문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천안에 있는 한 장어집에서는 아예 손님 테이블에 '양심저울'을 갖다


놓기도 하였는데요. 이렇게 함으로서 손님들에게 '정량'을 제공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한 이유


는 양심적으로 손님을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저울을 테이블에 배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양심저울'은 업주들에게는 고객의 믿음을 회복해주는 훌륭한 수단이 되었고, 나아가 소비자들에게는 중량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함으로써 개운한 마음으로 소비를 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양심저울'은 단순히 무게만 측정하는


것 이상으로 공급자와 소비자 간의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쌓게 하는 역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어떤 이익과 권위를 위해서 양심을 속이고 거짓을 믿게 하는 비양심적인 형태는 없을까요?


안타깝게도 이러한 비양심적인 형태는 교회에서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2000년전 예수님께서는 교리의 기준을 정해주셨


지만, 그 기준을 따르지 않고 교묘히 바꾼 교리를 지키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오죽했으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어느 교회가 하나님의 기준에 딱 들어맞는 곳인지 알 방법이 없어서 아예 교회를 안 간다"고 말할까요?


교회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저울'이라는 회복 카드를 꺼내 들 때가 된 것은 아닐까요?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



믿음으로 천국에 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가가


관건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크다고 자부하더라도 성경 말씀에 더하거나 빼버린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되겠죠.


즉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신앙의 '양심저울'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장 16절)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리를 


원하고 원하엿노라


(누가복음 22장 14~15절)



명절 끝날(초막적)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한복음 7장 37절)



예수님께서는 '양심저울'의 역활을 하는 확실한 교리의 기준을 정해주셨습니다. 양심이 깨끗한 교회인지 아닌지는


안식일, 유월절, 초막절 등의 절기를 지키는지의 행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 양심이 있다고 하면서도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하지 않는다면 교인들을 속이고 자신도 속이는 행위입니다. 마치 물건의 중량을 속여서 파는


비양심적인 불법장사치들처럼 말이죠.



그리스도의 말씀에 위해되는 믿음과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깨끗한 양심을 갖게 하는


교회를 찾는 방법은 '성경' 이라는 양심저울에 달아보는 것만이 유일합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디모데후서 3장 15절)




<참고자료>


1. '정량 불만제로 송파 양심저울이 간다', 아시아경제, 2010.5.23.

2. '장어 전문식당에 웬 저울? 맛은 기본... 놀랄 만한 양은 '덤', 중앙일보, 2011.12.27.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속에서 올바른 길잡이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귀한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바로 " 어머니의 교훈" 입니다.


어머니 교훈을 통해서 올바르게 인생을 항해하는 초석이 되어 보게요~~



첫번째 


하나님께서는 늘 사랑을 주신 것처럼 주는 사랑이 받는 사랑보다 더 복이 


있습니다.



두번째


하나님께 영관을 돌리면 그 영광은 결국 자신의 것이 됩니다



세번째


아름답게 보는 마음은 미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을 이루게 합니다



네번째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좋은 것을 양보 했을 때 더 좋은 것으로 축복을 받았듯이


우리들도 형제들에게 좋은 것을 양보하면 더 좋은 축복을 받게 됩니다



다섯번째


높은 마음이란 섭섭하게 느끼는 마음입니다



여섯번째


다른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고 자신의 할 일에만 충성되게 합시다


주인된 마음으로 일하면 힘들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일곱번째


불만이 가득차면 교만이 생깁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불만과 교만이 없어지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여덟번째


형제 자매를 칭찬하면 내게 칭찬이 돌아옵니다



아홉번째


바다가 모든 더러운 것을 받아 정화시키듯이 모든 형제자매들의 허물까지도 감싸줄 수


있는 바다같이 넓은 마음이 진정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열번째


어린 양의 인도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어린 양보다 더 작은 양이 되어야 합니다



열한번째


희생은 큰그릇이 되기 위해 요구되는 과정입니다



열두번째


오늘의 고통을 참고 인내해야 함은 하늘나라가 내게 있기 때문입니다



열세번째


하나님은 섬기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섬김 받기를 원하지 않고 서로 섬기는 마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입니다



오늘도 저의 티스토리에 방문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기도 드립니다.


오늘 하루 너무 너무 더웠습니다.


특히나 오늘은 일년주 해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 였지요~~


그렇다 보니,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는 하늘고향 '천국'이 더욱 그리워 지는 하루 였습니다.


오늘은 육체를 입고 있는 우리의 모습속에 청력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합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청령이 좋으신가요?


나이가 들면 다들 청력이 떨어 진다고 얘기들을 하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세상에는 어린이들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다고 합니다.


혹시 들어 보셨나요?


바로 모스키토음 입니다.


'모스키토음(The Mosquito)'이 무엇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조금 살펴 보겠습니다.




우선 사전적 의미는 " 20살이 넘으면 귀가 퇴화하기 시작해 들리지 않게 되는 고주파 소리'


라고 국어사전에 정의하고 있습니다.(네어버 참조)


우리가 잘아는(??) 애니메이션인 '명탐정 코난' 이란 영화에도 소개 된 적이 있었죠...!!


인간의 청력은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높은 주파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됩니다.


모스키토는 10대 부터 20대 초반의 젊은 층에게는 잘 들리지만,


20대 중반 이상의 연령 층에게는 잘 안들리는 17KHz 이상의 높은 주파수의 음을 내는


음향 장치 입니다.


보통 어른은 14 KHz


청소년은 16 ~ 18 KHz


어린이는 20 KHz 까지 들을 수 있다고 하는데요.


모스키토음은 어린이랑 청소년만 들을 수 있도록 17 ~ 18 KHz 의 음을 사용합니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나요?


같은 인간인데 어린이만 들리는 소리가 있다니..


혹시 궁금하시죠.. 도대체 어떤 소리인지가...


ㅎㅎ 그래서 준비 했습니다. 직접 확인해 보게요~~


아마 깜짝 놀라실 꺼예요~~~ ^^




확인해 보셨나요?


전 10 KHz 까지만 들리더라구요.. (나이가 ~~~ ?? )


하나님께서는 육의 것을 통해 언제나 영적인 것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십니다.


바로, 영적으로도 이런 모스키토음이 존재한다는 사실...


성경을 통해 살펴 보게요~~


요한복음 10장 26~27절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내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양은 실제 양이 아니죠!!!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비유한 것 입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만 들을 수가 있는 음성이 있다는 것이죠 !!!


바로 영적 '모스키도음' 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차례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교훈해 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7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요한계시록 2장 11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요한계시록 2장 17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요한계시록 2장 29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요한계시록 3장 6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요한계시록 3장 13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요한계시록 3장 22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자들이 귀 있는 자가 되는 것일까요?


요한계시록 22장 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마지막 시대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생명수를 주신다고 오라고 부르십니다.


성령과 신부의 말씀에 따라 생명수를 받으러 오시는 자들은


분명히 구원받을 자들이요. 귀 있는 자들 입니다.


또한 성령과 신부가 계신 곳에 와야지만 성령과 신부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과 신부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유일하게 성령과 신부를 믿고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교회 입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성령이신 아버지 안상홍님과


신부되신 새예루살렘성 하늘 어머니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성령과 신부의 음성을 듣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성령과 신부를 전하는 70억 전도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과 신부를 믿는 하나님의교회에 오셔서


하나님의 음성을 온전히 들으셔서 구원받으시는 축복을 받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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