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찬바람이 귓볼을 스쳐지나가면, 주머니속으로 손을 집어 넣고 어깨를 움추리는 겨울이 왔습


니다. 다들 롱~~패딩 하나씩 입고 계시죠? 저도 얼마전 하나 겟(get) 했습니다. 근데. 날씨가 안추워요..ㅎ


오늘은 예루살렘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볼까 해요. 


성경에서는 예루살렘을 두 가지로 나타내고 있는데요. '땅에 있는 예루살렘'과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입


니다. 


(출처:pixabay)


땅의 예루살렘과 하늘 예루살렘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 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니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


더라",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라라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성경은 수없이 많은 곳에서 예루살렘을 이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코 지금 중동에 있는 예루살렘


이라 할 수 없는 것이죠. 성벽 하나 남아 있는 중동의 예루살렘이 보좌에 앉을 수도 없거니와, 찬송을 받


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위의 성경구절에 나타난 '새 예루살렘'은 무엇을 말하고 있


는 것일까요?


-요한계시록 22장 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사도 요한은 계시 가운데 구원을 베푸시는 성령과 신부를 보았습니다. 성령 하나님과 신부께서 주시는


생명수가 값없이 인류에게 전해지는 장면에서 성경은 끝이 나는데요. 사도 요한은 여기 나타난 신부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해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천사를 통해 신부에 대해 확인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요한계시록 21장 9~10절-

일곱 천사 중 하난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사도 요한을 데리고 간 천사가 보여준 신부는 다름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었습


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었던 사도 요한이 이를 보고 마치 '남편을 위해 단장한


신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한계시록 21장 2절)


여기서 사도 요한이 본 예루살렘은 분명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아닌 것이죠


-갈라디아서 4장 26절-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사도 요한이 보았던,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하늘의 예루살렘은 바로 우리 어머니십니다. 그런데 이 짧은


성경 구절 속에 여러 가지 의문이 들게 됩니다. '우리의 어머니'라는 말의 뜻은 무엇이며, '왜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왔을까' 하는 것과 또 '우리'라는 존재는 누구인가 하는 점이죠.


생명의 모체, 어머니에 대하여


(출처:pixabay)


그럼 먼저 '어머니'에 대해 살펴 볼까요


지구에 존재하는 어떤 생명체든 그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모체가 필요한데요. 즉 생명은 어머니로


부터 이어받는다라는 것이죠. 육신의 생명은 육신의 어머니에게서, 영의 생명은 바로 영의 어머니를 통해


서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과연 영의 어머니가 존재하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창세기 1장 26~27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말씀하시는데 왜 '나'라고 단수의 표현을 쓰지 않고 '우리'라는 복수의 표현을 쓰셨을까요. 또한


여기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도 '남자'와 '여자'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이


'남자'와 '여자'라면 하나님의 형상 안에는 분명 '남자의 형상'과 '여자의 형상'이 존재한다는 뜻이죠. 그래


서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을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성적 형상의 하


나님은 당연히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하시기에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


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의 생명을 위해서는 분명 어머니 하나님이 계셔야 하고 , 그 어


머니 하나님의 등장을 성경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하늘 예루살렘의 실체는 하늘 어머니입니다.


(출처:pixabay)


다음으로는 '왜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왔을까'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예루살렘이 '하늘 어머니'


라는 데 그 해답이 있는데요. 어머니의 존재는 생명을 잉태하고 낳으며 기르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희생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에 계셔야 할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께서 하늘에 계시지 않고 이 땅에 내려온 이


유는 바로 이 지구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장 25절-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인 영생은 영의 어머니가 아니면 우리에게 주실 수 없기 때문에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결국 희생이라는 길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이사야 50장 1절-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 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므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야 오직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허물을 인하여 내어 보냄을 입었느니라


하늘에서 이 땅까지의 멀고 먼 여정을 오로지 자녀를 향한 사랑으로 감내하신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십


니다. 그러기에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이유를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를 믿는 자들


-갈라디아서 4장 26절-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이 성경구절 속에 담긴 뜻 중에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출처:pixabay)

-갈라디아서 4장 28~30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여기서 '우리'라는 대상은 이삭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삭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게서 미리 축복해주셨


습니다. 아브라함 가정에는 하갈이라는 몸종을 통해 장자인 이스마엘이 태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


님께서 오직 이삭에게만 유업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이죠.


-창세기 17장 18~19절-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상속자의 조건은 아버지가 낳은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아버지의 피만 이어


받아도 상속자의 조건이 된다면 14년이나 먼저 태어난 이스마엘이 당연히 상속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러나 하나님게서는 이삭이 상속자가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는 상속자의 조건이 바로 어머니에게 있


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어머니인 사라를 통해 태어난 자만을 상속자로 정하


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이삭과 같은 자녀라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


을 믿고 있는 우리가 구원의 약속을 받은 자라는 것을 밝혀두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31절-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하늘나라의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종의 자녀가 아닌 오직 어머니로 말미암아 상속을 약속받은 이삭처럼


하늘 어머니를 믿음으로 구원을 약속받은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곧 이삭과 같이 어머니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자녀라는 뜻인 것이죠.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될 수도 없고 영생을 받을 수


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인 영생은 최종적으로 어머니로 말미암아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중동에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도 있습니


다. 먼 옛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를 올렸던 선지자들도 있었습니다. 그 예가 바로 '다니엘과 그 친구들'


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 이스라엘의 독립을 바라보며, 낯선 이국땅에서 이스라엘을


그리워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말이죠..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은 독립을 했으며, 더이상 나라 잃은 떠돌이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욱이 이스라엘 국민이 아니며. 영적으로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를 향하여 기도를 해야 하며, 누구를 향하여 그 믿음을 지켜야 할까요? 


눈에 보이는 중동지방의 예루살렘을 향해야 할까요? 아니면, 우리 영의 어머니이신 하늘 예루살렘을 향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교회에서는 안식일 후 제 삼일에 맞이하는 화요일에 삼일 예배를 지키는데요.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키는 일반 개신교에서는 수요일에 수요 예배를 지키로 있습니다.


왜 이렇게 다른것일까요?


먼저, 지난 2016년에 '조선일보' 기사내용 중 수요 예배에 대한 기사내용이 있어서 먼저 소개해 드릴께요.

 

출처 : 픽사베이 (pixabay)


수요 예배는 성경에 없다?


2016년 2월 19일자 '조선일보'에 수요예배에 대한 기사가 게재된 바 있어요. 문화면 '종교, 아 그래?' 코너에서 


종교전문기자가 쓴 <美. 유럽에 없던 韓 개신교의 발명품>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그것 입니다.




"월~금요일 식당에서 오전 10시~오후10시 근무. 수요일은 오후 8시 퇴근."




기사는 목회자들의 부업 실태 조사 중 한 응답자의 답변으로 시작됐습니다. 2014년 한 신학대 교수가 목회자 900명을


대상으로 부업 실태를 조사했는데, 미자립 교회의 목회자들 가운데 하루 12시간씩 부업을 하면서도 수요일에는 2시간


일찍 퇴근을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수요 예배 때문인데요.



기자는 "수요 예배는 새벽 기도회, 금요 철야 기도회와 함께 한국 개산교만의 특색을 보여주는 예배로, 성경에는 없는


내용"이라며 "삼일 예배"라고도 하는데, 개신교회가 지키는 주일인 일요일 후 삼 일째 되는 날을 계산해 수요일에 지키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어 "개신교계에서는 수요 예배의 기원을 1907년 평양 대부흥이 아닐까 추정하고 잇다"고 밝히며 일본 메이지학원대


종교사 교수의 "주일 예배 후 다시 일주일을 기다르는 게 너무 길게 느껴진 교인들의 열정에 비춰 봐도 일주일의 중간인


수요일 예배가 정착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수요 예배는 개신교 본고장인 유럽이나


미국에도 없던 전통을 한국 개신교계의 열정이 만들어낸 개신교 한류인 셈"이라고 결론 내렸네요.



요지는 '수요 예배는 성경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한국의 개신


교회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것을 100년 넘게 지켜오고 있는 것이죠.



이후 10월 12일, 국민일보는 이에 대해 반박하는 투의 기사를 냈는데요. <수요저녁예배.금요기도회가 개신교 한류?>


라는 제목의 기사로, "수요예배나 금요기도회는 한국 교회의 발명품이 아니라 18세기 이후 영국과 미국 등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던 공적 모임을 우리 형편에 맞게 적용한 것'이라는 반론을 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가르치는 삼일 예배는 언제일까요?



출처 : 픽사베이 (pixabay)


성경이 가르치는 삼일 예배는 안식일로 부터 삼일째 되는날... 화요일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수요 예배는 성경에 없습니다.


국민일보의 반론이 어설픈 변경에 불과한 것은 수요 예배가 한국 교회의 발명품이냐, 서양 교회의 전통이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수요 예배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지가 중요한 문제 아닐까요?



그렇다면 성경은 삼일 예배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성경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에 명시하고 있는데요.


성경에 나타난 일곱째날 안식일은 오늘날 토요일에 해당합니다. 토요일 후 삼 일째 예배를 드린다면 수요일이 아닌


'화요일'에 드려야 하는 것이죠. 화요일에 드리는 삼일 예배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19장 11~13절-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칠일을 부정하리니 그는 제삼일과 제칠일에 이 잿물로 스스로 정결케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제삼일과 제칠일에 스스로 정켤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 누구


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스스로 정켤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쳐질 것은 정켤케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저 있음이니라



이 말씀과 같이 사람의 시체를 만진 사람은 삼 일과 칠 일째 스스로 정켤게 해야 하는데요.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뜻이죠.


이 말씀이 그저 구약 시대의 한 예법 정도로만 치부해서는 않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테 할 수 없느니라



구약의 율법은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참 형상은 지금 우리가 지키는 것이죠. 삼 일과 칠 일에 정켤케


해야 한다는 것은 삼일 예배와 일곱째날 안식일 예배를 통해 영혼이 정결해진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시체에 대한 말씀은


하나님을 영접하지 못한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이죠.



-마태복음 8장 22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죽은 자들이 어찌 죽은 자들의 장례를 치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눈으로 보기에는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아 영혼의 생명을 얻지 못한 자들을 '죽은 자'로 여겼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민수기에 언급한 '사람의 시체'는 세상에 살아가지만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고, 그들과 부비며 살


아가는 우리들은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가 되는 것이죠. 그러니 우리는 삼일과 칠일에 하나님께 나아가 정결함을 받


아야만 하나님의 백성의 대열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일주일 중 어느 하루만 예배를 지켜도 된다면 하나님께서 굳이 삼일과 칠일 이 두 날을 특정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에 드려야 합니다. 공적 모임이야 사람의 형편에 따라 얼마든지 바꿈 수 있지만


예배일은 하나님의 권한이요, 엄중한 명령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 3~9절-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


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이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언제 하나님께 얘배를 올려야 하는지를 알아 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전세계가 서로 다른 종교와 입장으로 헐뜯고 싸우며, 때로는 폭동으로 까지 이어져 인명이 다치는


일도 일어나는 안타까운 현실에 비추어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을 당시 초대교회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되


돌아볼까 합니다.



먼저, 초대교회(Early Church)는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세워주시고 사도들이 다니던 교회입니다. 베드로, 바울, 요한 등


은 그곳에서 영생과 구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은 서로 앞다투어 자신들이 초대교회라 주장하고 있지만, 성경은 아니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초대교회의 진리'가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초대교회는 어떠한 곳일까요?


-사도행전 20장 28~30절-

하나님이 자기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사도 바울은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 에베소에 있는 장로들에게 고별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떠난 뒤에 성도들을 꾀어내는 자, 즉 거짓선지자들이 일어날 것에 대해 염려하며,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올바른


믿음을 지켜나가길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설교 중에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Church of God's blood)를 언급했습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을 신앙


하는 성도들이 다니던 '초대교회'를 지칭한 것인데요. 로마의 압제와 핍박 가운데서도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피로 사신 교회, 즉 하나님의 피로 세우신 교회에서 믿음을 지켜 나갔습니다.



이제, 초대교회의 특징에 대해 알아 볼까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피로 교회를 세우셨느냐는 것이죠. 이 부분에 대해서 공동 번역 성경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공동번역, 사도행전 20장 28절-

여러분은 늘 자신을 살피며 성령께서 맡겨주신 양떼들을 잘 돌보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값을 치르고 얻으신 당신의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성자하나님, 즉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의 값으로 세워진 곳입니다. 당신의 희생의 피로 교회를 세우셨으니,


당연히 그곳은 예수님의 소유인 것이죠. 그렇다면 '예수님의 피'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마태복음 26장 19~28절-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예수께서..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께서 '나의 피'라고 말씀하신 '이것'은 바로 유월절의 포도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력 1월 14일 저녁에 행하신


유월절 성만찬 자리에서 떡이 당신의 몸이며, 포도주가 당신의 피임을 알려주셧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피'로 세


워진 교회라면 '유월절'이라는 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유월절 진리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초대교회의 이름을 알아야 겠죠?

초대교회 당시 예수님의 피로 세우신 교회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요?


-고린도전서 1장 2절-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자들과...


이천 년 전, 그리스 남단에 위치한 고린도(Corinth)라는 지역에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했습니다. 고린도뿐만 아니라


에베소(Ephesus), 갈라디아(Galatia), 빌립보(Philippi)에도 하나님의 교회가 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곳에 다니는


사람들을 가리켜 '성도'라 불렀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세우신 초대교회의 이름은 하나님의 교회였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소아시아 지방 각 도시마다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신 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럽과 아시아로 전파됐기 때문인데요. 바울 또한 유대교에서 하나님의 교회로


개종한 대표적 인물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3절 참조)



오늘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입니다. 유월절의 진리가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피로 세우신 교회라는 의미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을 핍박했던 유대교 사람들에게 교법사 가말리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38~39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하나님의 교회의 정통성은 그 모든 사상과 소행이 하나님께로 나왔기에 절대 변질 될 수도, 흐려질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훼방에도 건재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격는 일들 중에서 잘못인줄 알면서도 방관, 혹은 외면함으로서


짓게 되는 죄에 관해서 알아볼까 해요~


조금은 무거운 주제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께서 특별히 허락하신 복음의 일군의 역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보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부터 과거의 역사속으로 잠시 들어가 볼까요~



아이히만의 재판과 죄명


1961년 4월 11일, 예루살렘의 한 법정에서는 2차 세계대전의 전범 재판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잡지 '뉴요커'의 기자였던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 하의 범죄자를 직접 대면하고자 현장에서 공개


재판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전범 중에는 아돌프 아이히만, 그도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세계 근대사에 가장 큰 오점으로 기록된


홀로코스트를 주도한 핵심 인물입니다.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각지에서 유대인들을


잡아 강제로 열차에 태워 폴란드듸 수용소까지 이송하는 최고 책임자였습니다. 어린이 150만 명을


포함한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장본인인 셈입니다.


그런데 한나 아렌트의 눈으로 확인한 아이히만은 극악무도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지극히


평범했습니다. 오히려 매우 친절하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가정에 충실한 아빠이자 듬직한


남편이었습니다.



아이히만은 판사에게 이렇게 항변했습니다.


"나는 잘못이 없습니다. 나는 월급을 받는 관리 중 한 사람으로서 상부의 지시를 따랐을 뿐입니다. 죄


가 있다면 명령에 따른 것이겠지요."



그는 재판 내내 결백을 주장하며, 만약 히틀러가 자신의 가족을 가스실에 보내라는 명령을 내렸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그의 재판을 지켜본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도 그의


심리는 정상이며, 심지어 준법정신이 투철한 인물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에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가진 근면성 자체는 죄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무사유 ( Sheer Thoughtlessness-순수한 무심 *의역*)' 때문이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방관했던 아이히만은 결국 1962년 6월 1일, 교수형에 처해 졌


습니다. 형이 집행되고 난 후 밝혀진 사실이지만 법정에서의 그의 발언과 행위는 연기였다고 합니다.


그는 청년 때부터 나치에 입당하여 베를린 친위대에서 근무했던 지독한 반유대주의자였습니다.


나치 지도부가 그에게 유대인을 멸절시키라는 임무를 준 것도, 그가 준법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치에 대한 강한 충성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법정에서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선량한 사람으로 둔갑해 모든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였던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재판과 죄명


선과 악을 가리는 엄중한 일, 재판.


하늘에서도 재판이 행해집니다. 세상의 법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선과 악을 가리기 힘들


수 있지만 하늘의 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과 악이 아주 명확하게 구분되는데, 그것을 기록해놓은 것


이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이라는 법전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0장 12절)



흥미로운 것은 하늘 법정에도 아돌프 아이히만 같은 자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명령


을 받드는 사람으로 둔갑한 거짓 선지자들인데요.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라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태복음 7장 22~23절)



그들의 마음속에는 대적자의 이념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마지막까지 스스로를 선지자라는 이름으로


감히 하나님마저 속이려 하고, 아이히만처럼 자신에게 죄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시키신 대로 한 것 뿐


이라고 억울한 척 항변하는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명백히 기록돼 있는 하나님의 법이 아닌 불


법으로 수많은 영혼들을 죽음의 열차 안으로 몰아넣었으니 어찌 그 죄를 면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올라보 믿고자 한다면 자신을 지도하는 이가 성경대로 가르치는 참 선지자인지 심각하게 살


펴야 할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도하는 거짓 선지자를 따르다가는 천국으로 가는 열차가 아닌,


영영한 사망을 향해 달려가는 열차를 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 도다


(이사야 9장 16절)




<참고자료>

1. '그가 유죄인 이유', EBS 지식채널e

2. '백치를 철학자로 만드는 로얄 로드', 써네스트

오늘은 하나님의교회에서 알려주는 초막절에 대해서 알아 보게요~


초막절은 추수절의 끝 절기며 일 년 중 마지막 절기로 성력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지켜졌습니다 (레위기 23장 34~36절). 초막절은 구약시대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에 와서도 초림 예수님께서 지키셨고 사도들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지켰던 절기입니다. 마지막 시대에도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의 가르침을 받은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1년 중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초막절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안상홍님께서는 성경의 예언을 따라 오셔서 무너진 시온을 건설해 주시고 모든 절기를 복구시켜 주셨습니다.



초막절의 유래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을 받아서 내려오던 날부터 모든 백성에게 언약의 말씀과 성막 지을 문제를 다 설명한 후에(출애굽기 34장 27~35절) 그달 15일부터 7일간 성막 지을 재료인 금, 은, 포목, 목재 등을 자원하는 사람들이 넘치도록 풍성하게 드려 성막을 짓게 하였습니다(출애굽기 35장 4~29절, 36장 5~7절). 여호와께서 이 성막 지을 재료를 제조하여 바친 그 7일간을 기념하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말미암아 대대로 이날을 기억하게 하시려고 초막절을 정하여 지키게 하셧습니다.

이 초막절을 장막절, 또는 구려절이라고도 합니다(구역 성경 참고).


초막절의 의식


이스라엘 백성은 초막절을 지킬 때마다 장막 짓는 형식을 행하여 초막을 짓기도 하고 종려나무나 화석류 나무나 산버드나무를 취하여 성전 마당에나 집 위에 깔고, 덮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주일간 거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빈곤한 가정은 서로 도와주기도 하며 절기를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느혜미야 8장 9~18절, 레위기 23장 39~43절, 신명기 16장 11~15절, 스가랴 14장 15~18절).



초막절의 예언 성취


성경에는 사람을 나무로 표상하기도 하고(예레미야 5장 14절), 거룩한 성도들을 성전 재료로 표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2절). 이와 같이 풀이나 나무로 즐거워했던 의식이나, 모세를 통하여 일주일 동안 성전 재료를 풍성히 모음으로써 거룩한 성막을 완성했던 지난날의 역사는, 나무로 표상되고 성전 재료로 표상된 14만 4천 성도들이 모이게 됨으로써 완성될 지상 복음사업에 대한 예언입니다. 우리는 이 절기에 전도대회를 열어, 성막 재료를 모음과 같이 성전 재료인 성도들을 모음으로써 예수 강림운동의 기초를 잡아야 할 것입니다.


초막절의 약속


초막절은 하늘 예루살렘 성전의 재료인 14만 4천 성도들을 모으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인 성령을 허락 받는 기쁨의 날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러한 사실들을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스가랴 14장 16~19절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여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본문 내용 속에서는 초막절을 지커러 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성령)를 내리지 않겠다고 분명히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초막절을 지키러 오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것이며, 그들은 벌을 받게 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초막절을 지키지도 않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다] ,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고 말하는 것은 전혀 성경에 없는 거짓된 사단의 속임이요, 허탄한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초막절 지키는 백성에게 내려주기로 약속하셨고 예수님께서도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7장 37~39절


"명절(초막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스가랴 선지자는 초막절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않겠다고 설명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초막절을 지킴으로써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ㅏㄷ. 두 내용의 말씀을 비교해 보면 스가랴서에 나타난 초막절에 내리는 비는 곧 초막절에 허락하실 성령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위의 말씀으로 볼 때 성령은 분명히 오순절 절기나 초막절 절기를 지키는 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은혜이며 뜻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초막절을 지키지도 않는 사람들이 성령 받았다는 것은 어떤 신(神)의 역사일까요? 성령의 역사일까요. 악령의 역사일까요? 하나님은 결코 헛된 말씀을 아니 하시는 분입니다. 초막절 지키는 백성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면 초막절 지키지 않는 백성에게 어찌 성령을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분명코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의 역사입니다. 옛날 바리새 교인들은 메시야가 오실 줄을 알면서도 그를 영접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와 같이 오늘날 많은 성경학자는 늦은 비 성령이 내릴 줄은 알면서도 성령 받을 진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8장 7절, 3장 3절).



오늘은 하나님의교회에서 알려주는 대속죄일에 대해서 알아 보게요~ 

(대)속죄일은 성력 7월 10일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1년 동안 지은 죄를 용서받는 날입니다(레위기 23장 27절). 오늘날 우리도 1년 동안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속죄일을 지며야만 합니다. (대)속죄일을 지키지 않고서는 죄를 사함 받았다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의 가르침에 따라 (대)속죄일을 기념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대)속죄일은 하나님의 자녀가 1년 동안 지은 죄를 사단, 마귀에게 넘기는 날이기 때문에 사단,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대)속죄일을 지키지 못하게 안간힘을 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만 허락하신 절기를 지키지 못하게 하는 자들의 정체를 밝히 알야야 할 것입니다.



대속죄일의 유래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해방된 이후 40년간 광야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백성을 다스려 나가는 일에 필요한 율법을 주시고자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셨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40일 동안 금식을 한 뒤에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해 주신 십계명을 받아 들고 하산(下山)하였습니다. 그러나 산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40일 동안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필시 그가 죽었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지도자를 잃었다고 생각한 그들은 자신들을 가나안 땅까지 인도할 신(神)을 만들자고 제안하게 되었고, 마침내 만들어진 금송아지 주위에서 먹고 마시고 뛰면서 음란히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시내산에서 내려오던 모세는 너무나 놀랍고 어처구니없는 이 광경에 크게 지노하여 양손에 들고 있던 십계명의 돌비를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음란히 섬기던 금송아지 우상을 불태워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서 마시우게 했고, 그 날에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칼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행위를 크게 뉘우쳐 회개하기에 이르렀고, 그 회개의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두 번째 십계명을 허락하셨습니다. 깨뜨려진 십계명을 새로이 허락 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속죄(贖罪)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그 두 번째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오던 그 날이 매년 기념하고 있는 (대)속죄일 절기입니다(출애굽기 32장 1~35절).



대속죄일의 의식

1) 아사셀 염소는 사단의 표상물

구약시대의 대속죄일 의식을 살펴보면 제사장들의 죄 사함을 위해서는 수송아지를 제물로 삼았고, 백성의 속죄를 위해서는 염소가 제물로 사용되었습니다. (대)속죄일에 사용될 두 마리의 염소는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 채 제비에 뽑히게 됩니다. 그 중 한 염소는 하나님을 위하여 바침이 될 속죄제 제물이 되고 또 다른 한 염소는 아사셀을 위한 제물이 되며 그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광야 무인지경을 헤매다가 죽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곧 평시에 범한 백성의 죄가 성소로 임시 옮겨졌다가 (대)속죄일을 통하여 아사셀 수염소에게 그 죄를 안수하여 광야 무인지경으로 보내어 죽게 하는 일인데, 평시에 범한 우리들의 죄가 성소로 표상되신 그리스도에게로 임시 옮겨져 있다가 그것이 유월절이나 대속죄일 같은 절기를 통하여 사단 마귀에게 옮겨짐으로 사단은 최종적으로 죄를 짊어진 채 광야 무인지경 같은 무저갱 속에서 고난 받으며 최후에는 멸망하게 될 것을 (대)속죄일 절기를 통해서 그 이치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레위기 16장 6~22절).


2)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는 날


히브리서 9장 7절

"오직 둘째 장막(지성소)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대속죄일의 예언과 예언 성취

1) 예언

백성의 죄 -> 성소로 죄가 옮겨짐 -> (대)속죄일에 아사셀 수염소에게로 죄가 넘겨짐 -> 아사셀 수염소는 죄를 최종적으로 짊어지고 광야에서 고난 받다가 죽게 됩니다.


2) 예언 성취

우리의 죄 -> 그리스도께서 죄를 담당해 주심 -> (대)속죄일에 아사셀 염소에 비유된 사단에게 죄를 최종적으로 넘겨줌 -> 마귀는 지옥에서 고난 받다가 영원히 멸망 받게 됩니다.



다음에는 하나님의교회에서 알려주는 가을절기中 '초막절'에 대하여 알아 보게요~

오늘은 하나님의교회에서 알려주는 나팔절에 대해서 알아 보게요~

3차의 7개절기중 가을절기에 해당하는 나팔절의 유래와 의식, 그리고 나팔절에 대한 예언과 그 예언 성취는 어떻게 이루어

질까요?




나팔절은 가을 농작물을 마지막으로 거두게 되는 추수절의 시작인데 나팔을 크게 불어 (대)속죄일의 준비로 성회를 열고 거룩하게 지키는 날로서 성력 7월 1일에 거행된 절기입니다(레 23장 24절).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안상홍하나님께서 지키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나팔절을 규례로 삼아 매년 가을절기로 지키고 있으며, 복음의 나팔을 힘차게 불어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과 하나님의 절기를 담대히 전하고 있습니다


나팔절의 유래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을 받아서 내려오던 (대)속죄일을 해마다 잊지 않고 자신들의 죄를 절실히 느껴서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 매년 대속죄일 열흘 전에 나팔을 불게 하였고, 백성은 일 년 동안 지은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면서 부정한 것을 멀리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대)속죄일을 거룩히 준비하였습니다.



나팔절의 의식


나팔을 불어 기념하며 하나님께 화제를 드렸습니다. 


레 23:23~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 찌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아무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찌니라


나팔절의 예언과 예언성취


구약의 모든 일은 장래 일의 그림자니 실상은 1834년부터 1844년까지 있었던 윌리엄 밀러의 예수 재림 운동이 있을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나팔절부터 대속죄일까지 십일인 바, 십일은 예언 상 십 년으로 표상되어 있으므로(겔 4장 6절) 예수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시던 기원 1844년 10월 22일, 곧 성력 7월 10일의 대속죄일을 준비하기 위한 나팔절의 예언을 성취했습니다. 이렇듯 삼차의 칠개절기는 그 예언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루어집니다. 이 나팔절의 절기 가운데 나팔을 크게 분 것 같이 그 예언을 성취시키는 재림운동이 일어나 나팔소리 같은 큰 전도의 외침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기한이 다 차 가는 기원 1844년 성력 7월 초 1일부터는 모든 성도들이 더욱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으므로 예수께서 그 기도를 받아서 기원 1844년 10월 22일 곧 성력 7월 10일 대속죄일에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 당시 윌리엄 밀러의 재림운동이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지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행하지 않을 때에는 기묘한 방법으로 그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눅 19:37~40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그런고로 그 운동은 그들이 알지 못하고 행하였으나 취각절(나팔절)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다 같이 합심하여 나팔절을 지키고 그 날부터 대속죄일까지 십일간 간절한 기도를 올리게 되면 예수께서 분향하실 때에 우리들의 기도가 향연을 따라 하나님 앞에 상달되고(계 8장 3-4절), 기도의 응답으로서 귀한 은혜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로소이다"


무척 많이 들어본 소리일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거나, 혹은 교회에 다니는 이웃을 통해서 많이 들어보셨을 단어..


"내가 죄인입니다." "나의 죄때문입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왜? 한결같이 교회나 성당에 다시는 사람들의 입에서 "죄인"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일까요?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의교회에서 알려주는 죄사함의 비밀을 통해서 우리가 무슨죄를 지었으며, 또한 죄의 값은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를 알아 보면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신 하나님의 위대하신 사랑과 희생을 알아 보는 기회로 삼아 보게요~


먼저, 우리가 왜 죄인인지.. 그리고 무슨죄를 지었는지 알려면, 영혼문제에 대해 이해해 보아야 합니다. 


다들 무슨 죄를 지었는지 기억 못하시잖아요~~ ^^


성경에 기록된 영혼 문제에 대해 찾아 볼께요~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장 7절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는 장면인데요..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흙으로만


지으신 것이 아니라, 흙과 함께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흙은 육체를 의미하고,


생기는 영혼을 의미하는데요. 이 둘이 결합하여 결국 산 사람.. 즉, 생령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아... 그래서 살아있는 사람은 육체 영혼이 결합한 상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흙(육체)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영혼)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전에 기억하라


전도서 12장 7절



아... 둘이 돌아가는 곳이 다릅니다. 여기서 '돌아간다'는 표현에 잠시 주목해 볼까요?


'돌아간다'는 것은 원래 있었던 곳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육체를 이루고 있는 흙은 땅에서 나왔으므로 땅으로 돌아


간다고 하였고 영혼인 신은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 분이신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늘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오기 전에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영혼들인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는 상식적으로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 영적인 존재들을 무엇이라 알고 있습니까?.... 네 '천사' 입니다.


성경에서도 '천사'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천사였던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으로 구체적인 예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셧으며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잠언 8장 22~30절



잠언을 기록한 사람은 '솔로몬'인데요. 솔로몬은 잠언을 통해서 자신이 언제 태어났다고 하였나요? 바로 하나님께서 땅을


지으시기 전에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때에 솔로몬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땅도 들도 짓지 아니하


셨을 때'라고 하였으니 당시에 지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 있었을 리는 없


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은 하늘나라에서 천사의 모습으로 하나님과 함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요. 성경은 솔로몬 처럼 욥 또한 이 땅이 창조되기 전에 이미 존재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깨달아 았았거든 말할지니라


욥기 38장 1~4절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지구를 창조하실 때에 어디 있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욥에게 그 답을 알려


주셨는데요..


네가 아마 알리라 네가 그때에 났었나니 너의 년수가 많음이니라


욥기 38장 21절


그때가 언제적일까요? 땅의 기초를 놓을 때라고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실 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에 욥은 존재했었습니다. 그래서 "너의 년수가 많다"고 하신 것이죠. 그렇다면 그때에 욥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었을까요? 이 땅이 창조되기 전이므로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 이 땅에서 살고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솔로몬처럼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으로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솔로몬과 욥만 특별히 하늘에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솔로몬이나 욥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는 솔로몬과 욥의 경우를 통해 우리 모두가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 하늘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죠.


여기서 궁금함이 생길 것입니다.


우리가 천사였다면 왜? 지금 지구라는 땅으로 내려와 있는 걸까?


왜 하늘에 살고 있던 우리가 하늘을 떠나서 이 땅에 오게 된 것일까요? 어느누가 영화롭고 아름다운 천상의 세계를 마다


하고 이 지상세계에서 고난과 역경 속에 살아가고 싶어 할까요? 하지만 우리는 지상세계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하늘에서 이 땅으로 오신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여 함이니라


누가복음 19장 10절



인자이신 예수님께서 누구를 찾기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하셨습니까? '잃어버린 자' 입니다.


'잃어버린 자'는 과연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태복음 9장 13절


예수님께서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19장에서는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셨다고 하셨는데 말이죠.


종합해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하늘에서 죄 때문에 잃어버린 바 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찾은 이들은 죄로 말미암아 고달픈 이 지상세계로 내려온 영혼들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을 하늘의 죄인들이 모여 사는 감옥 즉 영적 도피성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이 세상에는 평화와 기쁨


보다는 괴로움과 고통이 더 많은 것입니다. 


"어... 내가 죄인이라구? 난 아무 죄도 짓지 않았는데.. 그리고 하늘에서 지은 죄를 어떻게 기억해?" 라고 하실 지도 모르겠


네요.. 하지만, 우리는 하늘에서 너무나도 큰 중죄를 지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구요?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로마서 6장 23절



성경은 우리가 지은 죄의 값이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다는 뜻인데요.


이 세상의 이치를 생각해 보아도 교통법규를 위반했다고 사형에 처하지는 않습니다. 도저히 용서받지못할 중대한 죄를지은


사람들에게만 사형판결이 내려지는데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하늘 천사세계에서 지은 죄가 사형죄라면...


우리 인류인생들이 참으로 하늘에서 엄청난 죄를 범하고 이 땅으로 추방된 것이 분명합니다.


다시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방법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다시 영화롭고 아름다운 천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죄 때문에 하늘에서


쫓겨났으니 다시 돌아갈 방법이 없을까요? 이 땅의 이치를 생각해 보면, 죄 사함을 받아야만 하늘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


니다.  사형수들도 '특별사면'이라는 죄사함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 가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되겠습니다.


다시말해 최 사함을 받지 않고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이 죄 사함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


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죄 사함의 길은 무엇일까요? 우리 인생들이 어떻게 해야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에베소서 1장 7절



예수님의 피로서 만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장 26~28절


말씀의 장면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최후의 만찬'속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바로 유월절을 지키시는 장면이죠~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의 포도주를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예수님의 피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죄 사함을 얻으려면 반드시 새언약 유월절을 지켜야 합니다. 다시 말해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위해


세워주신 진리가 바로 새언약 유월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 본향으로 다시 돌아가려면 반드시 새언약 유월절을


지켜야 하는 것이죠.


때로는 성경이 증거하는 새언약 유월절을 별스럽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새언약 유월절을 세우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를 위해서 입니다. 왜냐하면, 죄 사함의 축복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형벌을 받을 날만을 기약없이 기다리는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아니라면 굳이 죄 사함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영원한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죽음이란, 죄의 값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간절하신 마음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데요~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누가복음 22장 15절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장 20절



죄 사함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죄인들은 우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죄인들인 우리를 위해서 친히 새언약 유월절을


세워 주신 것입니다. 죄인들끼리 서로 서로 그 죄를 사해줄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성경은 죄 사함을 줄 수 있는 권세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마태복음 9장 6절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마가복음 2장 10절


그러므로 우리에게 새언약 유월절로 죄 사함을 주신 예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사라졌던 새언약 유월절을


회복해 주시고, 다시 죄 사함을 허락하신 안상홍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 사함을


주시려고 어떠한 길을 걸으셨나요? 높고 높은 하늘 보좌에 좌정하시어 세세토록 영광과 찬양을 받으셔야할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친히 영적 감옥인 이 땅까지 오셔서 죄인이 입어야 할 죄수복인 육체의 옷을 입으셨습니다. 그리


고 무지한 피조물들에게 멸시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희생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초림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도 우리들의 죄 사함을 위해서 하늘 아버지 안상홍님께서는 다시 한번 그 험한 길을 걸어 가셨


습니다. 2000년과 같이 핍박과 멸시를 감당하시며 걸어가신 그 길을...


이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가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까요? 이제 천국이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


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단 한 가지라도 하고 하늘나라에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 15장 7절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죄인이 회개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스스로 죄인


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함으로 회개하여, 허락하신 새언약 유월절로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받고 다시


영혼의 교향인 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며, 우리가 반드시 해야할 일임을 명심해야 겠습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알려주는 죄사함의 비밀은 바로 새언약 유월절이며,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사라졌던 새언약 유월


절을 이 시대에 다시 회복해 주신 안상홍님은 우리 영혼의 부모님이신 하늘 아버지이심을 깨달아야 겠습니다.


<죄사함의 비밀 안상홍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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