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속의 인물 중에 '아브라함'과 '사라'를 아시나요?


아브라함과 사라는 3500년 전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정착해 살았던


성경속의 인물입니다.  하란은 지금의 시리아와 터키 국경지역에 있는 곳으로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은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했습니다.



그후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 후에 모든 유대인들의 육체적, 정신적 조상


으로 되는 데요. 아브라함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우게 되지요.


또한 사라는 하나님께로부터 '열국의 어미'라는 칭함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아브라함과 사라가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유산을 물려주기까지의 그들의


일대기는 창세기 여러 장에 걸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성경은 단지 한 개인이나 개인의 가정사를 알려주기


위한 책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왜 이토록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아브라함의 가정사를 기록하셨을까요? 


'믿음의 조상'이라는 타이틀 말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알리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아브라함 가문의 후사와 천국의 후사에 관한 비밀입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


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베불


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


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누가복음 16장 19~24절)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비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어서 간 곳과 부자가 하나님을 부르는 대목인데요. 거지가 죽


어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는 점, 부작 하나님을 '아브라함'이라고 불렀다는 점을 고려


해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표상하는 인물임을 어렵지 안게 알 수 있습니다. 즉 아브라


함 가정의 역사는 단순히 한 개인의 가정사가 아닌 천국을 소망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표본이며 길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가정사 중 가장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자손이 누구이며, 가업은 무엇이고, 이를 물려받은 상속자에 대한 이야기 아닐까요?


왜냐하면, 아브라함 가문의 유업을 물려받은 후사에 대한 자격 조건은 곧 하나님의 나라


를 물려받을 천국 후사에 대한 자격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과연 아브라함에게서 유업을 물려받은 후사는 누구였는지 지금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의 첫 번째 후계자, 엘리에셀]



아브라함과 사라는 남부러울 것이 없었지만 한 가지 없는 게 있었는데요. 바로 '아들'


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거주하고 있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이미 75세가


넘었고, 아내 사라는 이미 가임기를 한 참 지나 있었죠.



그래서, 아브라함은 다메섹 출신인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점찍어놓고 있었습니다.


그는 상속자를 세우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께 의뢰를 합니다.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


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창세기 15장 2~3절)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반드시


'아브라함의 자손'이여야 한다는 것이죠.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창세기 15장 4~5절)



[아브라함의 두 번째 후계자, 장자 이스마엘]



하나님께서는 엘리에셀은 후사가 아니라며 아브라함의 몸에서 날 자가 후사가 될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도록 하였습니다.(창세기 16장 1~2절)


그렇게 아브라함의 나이 86세에 얻은 아들이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브라함의


혈육이 탄생했기 때문이죠. 노년에 얻은 아들 '이스마엘'이 얼마나 소중했을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삼게 해주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삼게 해주시길 고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창세기 17장 18절)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세기 17장 19절)



결국 하나님은 이스마엘도 그의 상속자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드시 '사라가 낳은 아들'이어야 했습니다. 그때 사라는 속으로 웃었어요.


상식적으로 아이를 갖는다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죠 (창세기 18장 11~15절).




[아브라함의 세 번째 후계자, 사라의 아들 이삭]


"네 몸에서 날 자가 너의 후사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아브라함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몸을 통해 난 자를 아브라함의 상속자로 삼게 하셨


죠. 이때 사라는 90세 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적의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


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창세기 21장 1~3절)



호적상의 장자 이스마엘이 태어난 지 14년 후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바로 이삭이죠. 하나님께서는 사라가 낳은 아들 '이삭'을 아브라함의


정식 상속자로 승인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가의 상속결정권이 사라에게 있었다는 뜻


이기도 합니다.



또한 고대 이스라엘 시대의 일반적인 장자 상속은 아버지를 통해서 였습니다.


우리나라 과거 조선시대처럼 말이죠. 따라서 장자라는 이유만으로 후사가 결정됐다면


당연히 먼저 태어난 이스마엘이 상속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이삭이 상속자가 


되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아브라함 가문의 유산 상속의 절대적인 조건은 바로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종이 아닌 자유자였던 사라의 아들이 아브라함 가문의 유산 상속자가 되는 절대적인


조건이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의 가정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뜻은 무엇일까요? 앞에서 살펴 본봐와 같이 아브라함은 아버지 하나님을 예표하는


인물입니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가의 상속자 이야기는 천국의 상속자가 누구인지를 알려


주는 것입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장 26절)



이 말씀 중 '우리'는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사도 바울은 천국을 유업으로 받고자


하는 자들은 어머니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


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라디아서 4장 28~30절)



이삭이 누구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았는지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되고 싶다면, 천국을 유업으로 받고 싶다면 과연 누가 필요할


까요?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라디아서 4장 31절)



'자유하는 여자'는 곧 '우리 어머니'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어머


니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죠. 이삭이 종이 아닌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였기에 유업


을 이어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자유자이신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을 믿어


야 천국의 유업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사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여기에 있


습니다.



누구나 영원한 삶을 소망합니다.


그러한 사람 중에 아주 유명한 분이 있었죠~~


바로 진나라 시황제.. '진시황'


선남선녀들을 시켜서 '영생초'를 구해서 오도록 지시했던 장본인..


얼마나 원하고 원하였을까요? 영원한 생명..


하지만, 결국은 구하지 못하고 천수를 다하였죠~


진시황도 원하고 누구나 원하는 영원한 생명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하나님의교회에서 알려주는 생명수를 살펴보게요~



'생명수'를 아시나요? 우리 영혼의 생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생명수 입니다.


물은 생명체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인체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물이죠. 체액은 연령, 지방함량, 성별에 따라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우리 몸의 45 ~ 


80%가 물로 구성되어 있어요. 연령과 지방함량이 낮을수록, 여성보다 남성이 체액의


비율이 높습니다. 



체내 수분이 1~2%만 부족해도 갈증을 느낀다고 합니다. 갈증은 단순히 입과 식도가


말라서가 아니라 체내 수분이 결핍되어 생기는 증상입니다. 고도의 탈수증은 발열, 


경련이나 불면, 불안, 환각 등의 정신증세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심각한 경우 혼수상태에


이르거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사막에서 조난당한 경우 사망 원인은 대부분 탈수증입니다.



이렇듯 물은 생명 그 자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는 우리 영혼에도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영혼의 생명인 영생도 생명수가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수가 없다면 우리 영혼도 심한 갈증을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영혼의 생명수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당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아모스 8장 11~13절)



우리 영혼에 필요한 생명수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


시대가 하나님의 진리인 생명수를 구하지만 얻을 수 없어 영혼이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음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수는 어디서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 생명수를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장 17절)



요한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밧모섬이라는 곳에서 계시를 받았습니다. 천사가 보여준


미래에 대한 일들 속에서 그는 성령과 신부가 생명수를 받으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죠. 여기에 등장하는 성령과 신부는 누구일까요? 성령은 성삼위일체 이론상


아버지 하나님이 분명합니다. 셍명수는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기에 이 시대 성령


께서 오셔서 생명수를 주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입니다.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장 7~8절)



그렇다면 아버지 하나님 옆에서 함께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는 어떤 존재일까요? 


생명수를 베푸시는 주체를 알지 못하고서는 생명수를 받을 수 없기에 '신부'에 대한


문제만큼은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사도 요한도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데요.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너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내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


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장 9~10절)



요한은 신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의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낡은 성벽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연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


인 예루살렘은 누구인지 사도 바울의 증거를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오직 위(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장 26절)



성령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는 하늘 어머니, 즉 어머니 하나님


이십니다. 이 시대 영혼의 생명을 위해 생명수를 받으려면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선지자들도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실체인 하늘 어머니께서 생명수를 주실 것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


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스가랴 14장 8절)



그가 나를 데리고 전(예루살렘 성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에스겔 47장 1~5절)



스가랴 선지자는 생명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 동서로 사시사철 흐를 것에 대한 예언


을 하고 있어요. 에스겔 선지자도 예루살렘 성전, 즉 하늘 어머니로부터 시작된 생명수가


쉼없이 흘러 넘칠 것을 예언했습니다. 처음에는 발목에 오르던 생명수가 점점 무릎, 허리


까지 차올라 나중에는 도저히 건널수 없는 강이 되었습니다. 이는 생명수인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에는 작게 시작됐지만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점점 더 왕성해질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세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에스겔 47장 12절)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로부터 흘러 넘친 생명수를 머금고 자란 나무의 실과가 먹을 만하


고 잎사귀는 약재료가 된다는 예언은 시대를 뛰어넘어 요한계시록으로 이어집니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


며...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요한계시록 22장 1~5절)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생명수가 솟아난다고 예언한 반면, 사도 요한은


'어린양의 보좌'에서 흐럴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예언도 성령의 신부 되신


하늘 어머니께서 생명수를 주신다는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는 '어린양의 보좌'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예레미야 3장 17절)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보좌, 즉 어린양의 보좌가 예루살렘이라고 증거하고 있습


니다.  다시 말해 사도 요한이 기록한 '어린양의 보좌'는 '하늘 어머니'를 뜻하는 것이죠.


이렇듯 성경 전반에 걸쳐 우리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생명수는 오직


어머니 하나님을 통해 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게서 주시는 생명수를 받은 자들이 하늘나라에서


세세토록 왕노릇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생명수를 받아야만 영생도, 구원도, 천국의


영광과 축복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시대 하늘 어머니께서 외치고 계십니다.



"오라 ! 누구든지 와서 생명수를 받으라." 라고 말입니다.


<참고자료>


1. '탈수 및 전해질 이상', 국가건강정보포털 의학정보


2. '탈수증', 두산백과

'예루살렘' 이라고 아시나요?


지금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성지 '예루살렘'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듯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예루살렘을 두 가지로 나타내고 있는데요.


'땅에 있는 예루살렘'과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 입니다.




성경에는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니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성경은 수없이 많은 곳에서 예루살렘을 이처럼 묘사하고 있는데요. 이는 결코 지금


중동지방에 있는 예루살렘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성벽 하나 남아 있는 중도의 예루살렘이


보좌에 앉을 수도 없으며, 찬송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렇다면 위의 성경구절에


나타난 '새 예루살렘'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장 17절)



사도 요한은 계시 가운데 구원을 베푸시는 성령과 신부를 보았습니다. 성령 하나님과


신부께서 주시는 생명수가 값없이 인류에게 전해지는 장면에서 성경은 끝이 납니다.


사도 요한은 여기 나타난 신부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해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천사를


통해 신부에 대해 확인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장 9~10절)


사도 요한을 데리고 간 천사가 보여준 신부는 다름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었던 사도 요한이 이를 보고


마치 '남편을 위해 단장한 신부'라고 기록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절 참조)


분명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아니지요~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장 26절)



사도 요한이 보았던,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하늘의  예루살렘은 바로 우리의 어머니


이십니다. 그런데 이 짧은 성경 구절 속에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기지 않나요?


'우리의 어머니'라는 말의 뜻은 무엇이며, '왜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왔을까?'


하는 것과 또 '우리'라는 존재는 누구일까 하는 점이죠~



그럼, 먼저 '어머니'에 대해 살펴 볼까요!



지구에 존재하는 어떤 생명체든 그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모체가 필요하죠~


즉 생명은 어머니로부터 이어받는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은 육신의 어머니에게서, 영의 생명은 바로 영의 어머니를 통해서 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과연 영의 어머니가 존재하는지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장 26~27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말씀하시는데 왜 '나'라고 단수의 표현을 쓰지 않고 '우리'


라는 복수의 표현을 쓰셨을까요. 또한 여기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도 '남자'


와 '여자'이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이 '남자'와 '여자'라면 하나님의 형상 안에는 분명


'남자의 형상'과 여자의 형상'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을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르죠~


그렇다면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은 당연히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하시기에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의 생명을 위해서는 분명


어머니 하나님이 계셔야 하고, 그 어머니 하나님의 등장을 성경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 예루살렘의 실체는 누구일까요?




하늘 예루살렘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왜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왔을까?' 하는


문제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문제는 예루살렘이 '하늘 어머니'라는 데 


그 답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존재는 생명을 잉태하고 낳으며 기르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희생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에 계셔야 할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께서 하늘에


계시지 않고 이 땅에 내려오신 이유는 바로 이 지구에 살고 있는 하나님으 자녀들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요한일서 2장 25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인 영생은 영의 어머니가 아니면 우리에게 주실 수


없기에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결국 희생이라는 길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희 어미르 ㄹ내어 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오직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허물을 인하여 내어 보냄을 입었느니라


(이사야 50장 1절)



하늘에서 이 땅까지의 멀고 먼 여정을 오로지 자녀 사랑으로 감내하신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이십니다.


그러기에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이유를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죠



그러면,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를 믿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장 26절)



이 성경구절 속에 담긴 뜻 중에 '우리'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갈라디아서 4장 28~30절)



'우리'라는 대상은 이삭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삭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축복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 가정에는 하갈이라는 종을 통해 장자인 


이스마엘이 태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직 이삭에게만 유업을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세기 17장 18~19절)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상속자의 조건은 아버지가 낳은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아버지의 피만 이어 받아도 상속자의 조건이 된다면 14년이나 먼저 태어난 이스마엘이


당연히 상속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삭이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상속자의 조건이 바로 어머니에게 있다는 것이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어머니인 사라를 통해 태어난 자만을 상속자로 정하겠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을 믿고 있는 우리가 구원의 약속을 받은 자라는 것을


밝혀 두신것입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라디아서 4장 31절)



하늘나라의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종의 자녀가 아닌 오직 어머니로 말미암아 상속을 


약속받은 이삭처럼  하늘 어머니를 믿음으로 구원을 약속받은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곧 이삭과 같이 어머니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자녀라는 뜻이죠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될 수 도 없고


영생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인 영생은 최종적으로 어머니로 말미암아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혼인잔치에 초대받는다면, 설레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잔치날이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않나요?


혹은, 한 나라의 왕 혹은 대통령의 결혼식에 초대받는다면,


초대받은 사람은 가문의 영과이요, 가족에게는 자랑스런 아버지, 어머니가 되지


않을까요?


하물며 하나님께서 초대하시는 천국혼인잔치는 어떨까요?



지금부터 성경에서 감추었던 비밀, 천국혼인잔치에 초대받는 방법을 공개할께요~



성경에서는 천국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것은 곧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으로 


알려주시는데요~  


예수님의 비유말씀속에 처음 등장하는 천국혼인잔치.. 


하지만, 신부가 등장하지 않아요~~



예수께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종들에게 이르되...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혼인잔치에 손이 가득한지라


(마태복음 22장 1~14절)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천국 혼인잔치 비유를 말씀하시며 어떤 사람들이


천국에 갈 수 있는지 교훈하셧는데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 속에는 아무리 봐도 신부가


보이지 않습니다. 신랑과 하객은 있는데 혼인잔치의 꽃이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신부가 빠진 것이죠~~


혹자는 "성경의 신부는 성도들"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요.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 주장이 얼마나 허무하며 오류투성이 인지 알 수 있습니다.


비유 속 신랑은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청한 사람들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태복음 9장 15절, 마가복음 2장 20절, 누가복음 5장 35절)



이 말씀에서는 청한 사람들, 즉 성도를 혼인집의 손님들이라 비유하셨는데요. 하객을


불러놓고 신부 대신 결혼을 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성도는 결코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부는 누구일까요? 


신부가 언급되지 않았던 공관복음서의 기록과는 달리 천국 혼인잔치가 성대히 열리는


장면을 기록하며 아내, 즉 신부를 언급해 놓은 책이 있습니다. 바로 요한계시록이죠~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요한계시록 19장 7~9절)



사도 요한은 어린양의 혼인잔치, 즉 천국 혼인잔치가 열리는 모습을 계시로 보았습니다.


그가 본 천국 혼인잔치에는 어린양이신 신랑과 그의 신부, 그리고 청함을 받은 손님들이


있었습니다. 청함을 입은 복 받은 자들은 당연히 성도들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어린양의 아내는 누구일까요?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장 9~10절)



신부의 모습을 보고 싶은 사도 요한의 요청에 천사가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이 하늘 예루살렘에 대해 언급한 사도 바울의 증거를 보겠습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장 26절)



신부를 일컬어 요한은 어린양의 아내라 했으며 하늘 예루살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예루살렘에 대해 사도 바울은 우리의 어머니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아내는 당연히 우리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성도인 우리는 과연 하늘 어머니의 존재를 어떻게


믿을 수 있으며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아버지 하나님만 믿어온 기성교인들에게는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이사야 62장 7절)



여기서 예루살렘이 단순히 성벽이라면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찬송을 받게


하시겠습니까. 세상에서 찬송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즉, 이 말씀에 나타난


예루살렘은 사도 바울이 증거하고 있는 우리의 어머니 즉, 하늘어머니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 예루살렘이신 하늘 어머니는 아무나 세울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섬기고 알아야 하는 하늘 어머니는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이 세워줄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도 알려 주셧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


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세기 2장 22~23절)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만든 하와를 아담에게 데려오자 아담은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하여 '여자'라 칭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담과 하와는 단지 아담과 하와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로마서 5장 14절)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장 20절)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성경 맨 마지막에 '오실 자'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죠.. 즉 아담은 오실 자를 표상하고 있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아담이


예수님을 나타낸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아담이 하와를 일컬어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칭했다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해주실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장 17절)



이처럼 가장 영예로운 초대인 천국 혼인잔치에 초대받는 방법은 바로, 성령과 신부


곧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천국 혼인잔치 모임에 참여하는 자들, 그들이 바로 '청함을 입은 복 받은 자들'


즉 구원을 얻을 자들인 것입니다.

20018년 세계25개국 지성이 한자리에 모여


'어머니 하나님' 진리를 탐구하는 국제 성경 세미나가


2018년 11월 1일 새예루살렘 판교성전에서


'Arise & Shine 2018 국제성경세미나' 라는 주제로 열렸습니다.



이날 성경과 과학이 증거하는 어머니하나님의 역활과 존재의 필요성을


수많은 지성들의 열띤 강연으로 이루어졌는데요~



그중 오늘은 우크라이나에서 오신 빅토르 시비댜(Victor Shividya)님의 강연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강연의 주인공인 빅토르 시비댜(Victor Shividya)님은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시며, 오늘 강연의 주제는 "열역학 법칙과 하나님"


이라는 주제입니다. 



열역학법칙... 물리전공자들에게는 친숙한 단어일지 몰라도, 그외의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안드로메다 어디쯤 있는 .. 뭐... 그런.. 그렇죠... ^^



하지만, 염려하지 마세요. 빅토르님의 강연을 그대로 옮겨드릴꺼니까요~~


아래 내용은 WATV 홈페이지에 소개된 'WATV 국제성경세미나'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휴대폰과 컴퓨터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부품들이 다 있다고 해도 구동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조립하는 외부로부터의 작용이 없다면 전혀 제품의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이보다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진 지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태양 에너지와 같은 외부의 작용이 없이는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습니다. 수많은 자연 법칙과 물리학 법칙은 우리의 우주가 창조자 없이는 절대 스스로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우주가 저절로, 우연히 생겨날 수 있을까?


안녕하십니까. 저는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연구센터에서 수석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와 같은 과학자들은 과학 지식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기계 및 설비를 제작하여 인류의 행복에 기여합니다. 이 과학 지식은 자연의 법칙과 구조 그리고 발전에 기반을 두는데, 이를 연구하는 과학 분야가 바로 물리학입니다.


물리학은 우주의 소재와 구조, 형성 과정 등을 연구하는 과학 분야입니다. 저는 물리학을 연구하면서 이 세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생성되었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하게 되었는데, 그때 받은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인간의 학문이 미치는 영역은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인류는 자신만의 법칙을 가지고 있는 완전한 개체, ‘원자’라는 극미소량의 물질도 아직까지 다 알지 못합니다. 하물며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거의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래서 저는 늘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우주가 저절로, 우연히 생겨날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모든 창조물에는 창조자가 존재한다


우주가 저절로 생겨났다고 하는 것은 휴대폰이나 컴퓨터가 저절로 생겨났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질들을 아무리 혼합한다 한들, 저절로 컴퓨터와 같은 복잡한 시스템이 형성되지는 않습니다. 물질에 전문가의 지식과 기술이 더해져야 물체로 만들어집니다. 모든 창조물에는 그것을 고안하고 창출한 창조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우주는 휴대폰이나 컴퓨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정교한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위대함은 땅과 하늘의 차이라 사실 비교 대상도 되지 않습니다. 휴대폰이나 컴퓨터와 같은 작은 물체도 당연히 사람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면서, 대우주는 저절로 창조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우주가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열역학 법칙(Thermodynamic laws)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2가지 법칙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에너지 전환과 보존 법칙(열역학 제1법칙)’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모든 에너지는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전환할 뿐, 스스로 발생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발전소의 전기는 태양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전환하여 사용하는 것이지 스스로 생성되는 것은 아니며, 모닥불의 열에너지 역시 빛 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이지 소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로 ‘에너지 방향성의 법칙(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에너지 전달에는 정해진 방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뜨거운 물이 담긴 컵을 온도가 낮은 실내에 두면 물의 온도가 떨어집니다. 왜냐하면 뜨거운 물에서 차가운 물로 열이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차가운 물을 저절로 뜨겁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열을 저온에서 고온으로 이동시키려면 반드시 외부의 작용(에너지 공급)이 필요합니다.


지구를 생각해봅시다. 지구는 태양 덕분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태양 에너지가 지구까지 도달하여 적절한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가 이 땅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태양이 없다면 광합성이 필수인 식물이 멸종할 것이고 식물을 먹이로 하는 동물도 멸종할 것이며 결국 그로인해 인간도 사라질 것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자 하나님


열역학 제1법칙과 제2법칙을 우주 창조의 순간에 적용해보면 흥미로운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주 창조의 순간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스스로 발생하거나 소멸하지 않는 에너지의 특성으로 볼 때, 우주의 에너지는 스스로 발생한 것일까요? 아니면 누군가 창조한 것일까요?


우주가 카오스(chaos; 특정 수준의 에너지를 가진 무질서)상태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우주는 자체 폭발 후 스스로 확장하였고 그 결과 은하계, 행성, 태양계, 별 등과 같이 매우 복잡한 구조로 저절로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앞서 말씀드린 두 법칙을 위배합니다. 우주가 스스로 폭발했다면, 무질서 상태에서 복잡한 우주 구조를 형성하기 위해 다량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카오스와 같은 무질서 상태에서는 에너지가 스스로 형성될 수 없습니다. 에너지가 스스로 생성되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그 많은 외부 에너지를 얻었겠습니까? 이 때문에 열역학 제1법칙을 위배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모든 자연 법칙과 물리학 법칙이 “우주는 창조자 없이는 절대 스스로 형성될 수 없다”는 결론을 말해줍니다.


결국 우리의 우주는 이러한 복잡한 구조를 형성한 창조자 덕분에 존재합니다. 놀랍게도 창조자 하나님에 의해 이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과학이 증거하는 것입니다.



출처 : https://watvseminar.org/ko/victor/


..... 이해가 되시나요?


음.. 아무튼 과학적 사고로 접근해 봤을때도, 우주가 그냥 생길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무질서에서 질서를 만들어 가는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반대로 질서가 무질서가 되는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합니다.


.... 더 어렵게 만드는것 같습니다. ㅜ.ㅜ



"우주는 창조자 없이는 절대 스스로 형성될 수 없다"는 말에 격한 공감을 표합니다.


엘로힘하나님이신 아버지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창조의 역사에


함께 하시면 어떨까요?

하나님의교회에서는 엘로힘하나님 즉 아버지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을


영접하여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엘로힘하나님은 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요?


먼저, 엘로힘(אלהים), 하나님의 복수 명사입니다.


구약성경의 원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성경에는 '하나님'이 '엘로힘'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바로 '하나님들'로 해석되는 이 표현은 구약성경 39권에 약 2500회 이상 등장한답니다.


이러한 의미는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엘로힘'이라는 이 수수께끼 같은 단어 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요?


엘로힘,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


이처럼, 엘로힘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사람의 형상을 통해 하나님이 '두 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시고 계시는데요~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장 26절~27절)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모델로 하여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남성적형상의 하나님과 여성적형상의 하나님 두 분이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두 분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이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창조사역을 하시며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복수형을 사용하시며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도 한 분이 아닌 두 분, 즉 아버지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께서 존재하신


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항상 두 분의 하나님이 역사하셨음을


'엘로힘'과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창세기 11장 1~7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사야 6장 8절)



오만한 인간들의 바벨탑 건설을 중단시키시는 역사를 행하시는 분도 두 분이십니다.


복음을 전할 사람들을 찾으시는 분도 한 분이 아닙니다. 이는 구원의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이 늘 두 분이 존재했다는 증거입니다.


바로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입니다.



하늘 가족의 대표, 아버지 하나님



대개는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요한복음 8장 41절)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계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에배소서 4장 5~6절)



하신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자세히 연구해보면 아버지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뜻이지, 하나님이


한 분만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데요. 즉,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아버지하나님은 유일하게 한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어떤 신도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인데요. "아버지는 한 분뿐"이라고


하신 것은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머니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반증이기도 하지요.



하나님은 분명 두 분이신데, 성경은 왜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고 표현한 것일까.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대표성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을지라도 가족의 대표인 아버지


의 이름만 적어 문패를 거는 이치와 같습니다. 누구나 아버지의 이름이 갖는 대표성


때문에 그 집에 아버지 혼자만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어머니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하늘 가족에도 이처럼 대표자이신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어머니


하나님이 계십니다.



또 다른 예로, 아담과 하와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5장 12~19절)


즉,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것인데요. 그런데 실제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지은 사람은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었어요.


죄를 지은 사람이 두 사람인데도 '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담이 갖는 대표성


때문인데요. 이를 두고 하와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따라서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하신 말씀을 "하나님은 한 분뿐"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성경을 단편적으로만


이해하여 곡해한 것입니다.



엘로힘 하나님, 성령과 신부




엘로힘 하나님, 즉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끄시는 장면은 성경


전반에 걸쳐 담겨 있습니다.


다음은 성경 마지막 장에 묘사된 두 분의 구원자에 대한 기록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장 17절)



하나님께서 성령과 신부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구원을 베푸신다는 예언입니다.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또한, 신부(bride)는 말 그대로 성령의 아내이니 '어머니 하나님'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과 신부는 천지창조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시며 사람을 창조하신 엘로힘,


즉 아버지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이십니다.



어머니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기 위해 마지막 성령시대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 일은 아버지만의 몫은 아니겠지요~~



'어머니하나님 (God the Mother)' 들어보셨나요?


스페인어로는 'Dios Madre'


독일어로는 'Gott mutter'


힌디어로는माता परमेश्वर ' 라고 읽습니다.




주위사람들에게 '어머니하나님에 대해 들어본적 있으신가요?' 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 낯선 반응을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전혀 낯설어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수 


있는데요~~~


바로, 남성과 여성 즉 양성(兩性)의 존재를 통해서 어머니하나님의 존재를


쉽게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죠~



다시말해, 남성과 여성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어머니하나님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1960년대에 이르러 몇몇 생물학자들이 '왜?' 라는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 양성의 존재는


오래동안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으로 간주되었어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생명체가 남성과 여성, 즉 엄마와 아빠, 두가지 성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1960년대 이후부터는 성의 존재이유에 대해 생물학자들의 수많은 논문과


이론들이 쏟아져 나오며, 1982년 캐나다의 진화생물학자인 벨(Graham Bell)의 단언과


같이 성의 존재 문제는 생물학 문제 중 단연 '여왕'이 되었다고 해요~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의 컬럼을 인용했어요~)



그러고 보면, 대부분의 생명체가 남성과 여성, 두 가지 성별을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참 불가사의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양성(兩性)은 번식에 있어서 단성(單性)에 비해


여러모로 불리하기 때문이죠~


좀더 깊히 생각해보면, 양성을 가진 생명체들은 자손번식이라는 당면과제에 있어서


수많은 단계들을 거쳐야 한답니다. 학자들은 이러한 단계들을 '성의 생태적 비용'


이라고 부르는데요~ 생명체들이 번식을 위해 때로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번식을 위한 장식 깃털은 포식자들의 눈을 피하지 못하고 도망치기도 


불리할 때가 있죠~~ 또한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포식자들에게도 위치가 알려져


목숨까지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생명체는 남성과 여성으로 존재하는 것일까요? 또한 양성의


존재가 진화의 결과라면 3가지 성으로 진화한 생명체도 있어야 하고, 4가지 성으로 


진화한 생명체도 있어야 하지만, 왜 남성과 여성, 즉 양성으로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여러 생물학자들이 다양한 의견들을 내 놓고 있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이론을 발표하진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놀랍게도 성경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답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의 뜻을 담아 창조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 11장)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알게 하기 위해 남성과 여성을 창조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장 26~27절)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이 '남자'와 '여자'예요~


하나님의 형상에는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과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렇게 하나님의 신성을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속에 담겨진 생명체를 통해서 


보여 주셨어요~


하나님을 알만 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장 19~20절)



하늘의 새도, 물속의 물고기도, 들판의 짐승들도 모두 양성으로 존재하고 있어요~


그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께서도 남성적 형상과 여성적 형상이 존재하기 때문이예요~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을 성경은 '아버지'라고 알려 주고 있어요~


그렇다면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을 우리는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당연히 '어머니 하나님' 이죠~~


사도 바울도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데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장 26절)


이말은 생명체가 남성과 여성, 두 가지 성으로 존재하는 것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신성을 분명히 알게끔 하시는 증거예요~


수많은 생명체 중 오직 인류에게만 주변 세계를 깨달을 수 있는 '지각'이라는


선물을 주셨는데요. 196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남성과 여성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이


던져졌으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아버지와 어머니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신성을 바로


알고 깨달아야 할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령(아버지하나님)과 신부(어머니하나님)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장 17절)


이처럼 날마다 우리에게 당신의 신성을 보여주신 엘로힘 하나님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생명수를 받으러 오라고 부르십니다.


어떠세요?


하나님의교회에서 알려주는 어머니하나님을 깨닫고, 주시는 생명수를 받고 싶으시죠~


요즘 정말 핫한 교회는 하나님의교회죠~


지구촌 곳곳에서 청년 대학생 봉사활동 단체인 아세즈(ASEZ)에서


활약하는 활동으로 세계 각국이 초대와 MOU 체결로


국제적 위상마져도 드높이고 있는데요~


얼마전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의 초청으로 대통령궁을 방문했었다죠~


아세즈의 행보는 어디까지일지.. 사뭇 궁금해 집니다~


여기서 한가지..


브라질 하면 아마존이 떠오르지 않나요?


아마존 하면 무시무시한 뱀, 아나콘다가 떠오르실텐데요~


전...ㅠㅠ 뱀이 너~무 무서워요~


그래서, 오늘은 사람들이 뱀~~을 무서워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 볼까 해요~



뱀~~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뱀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두려운 존재로서, 설화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뱀도 


공포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어요~. 


옛날이나 오늘날에나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뱀은 협오스럽고 꺼리는 존재인 것이죠~


그러면 왜? 사람을 뱀을 무서워하는 것일까요?


미국국림과학원회보(pnas) 2011년 11월 13일 온라인판에는 이 의문과 관련된 매우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실렸는데요~


바로 '사람의 DNA에 뱀에 대한 공포가 각인돼 이어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예요~


초기 인류가 뱀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반복해서 경험하게 됐고, 그 결과 뱀에 대한


공포가 DNA에 각인돼 이시대에까지 이어졌다는 설명인데요~



이를 증명하기 위해 미국 댈러스 닐 국제연구소 연구원인 토마스 헤드랜과 미국 코넬대


연구원 해리 그린은, 초기 인류가 뱀에 대한 공포를 얻게 된 경로를 추적해 나갔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그들은 초기 인류와 같이 원시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필리핀


원주민 아그타 네그리토스족을 통해, 밸과 인류의 상관관계를 파악해 냈다고 해요.


즉, 그들의 사냥 기록을 통해 뱀에 대한 공포가 사람의 DNA에 각인될 정도로 많은


공격을 받았는지를 분석한 것이죠.


연구 결과, 아그타족은 뱀이나 뱀의 먹이를 사냥할 때 뱀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뱀의 반복적인 공격으로 인해, 사람의 DNA에 '벰=공포'라는


공식을 새겼다는 얘기죠~


이 연구 결과가 맞다면 사람이 뱀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뼛속까지


새겨진 공포 때문이라는 것이죠~.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는 결코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가 현대 과학이 말하는 '사람과 뱀의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사람과 뱀과의 관계는 어떨까요?


성경은 초기 인류 이전부터 사람이 뱀을 싫어하고 무서워했던 이유를 비유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그들의 악연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돼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하와)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중안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장 1~5절)


하와는 뱀의 말에 속아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자신도 선악과를 먹고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었어요.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범을 어긴 연고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물론이고 죽음에 이르게 돼었죠(창세기 3장 22~23절, 창세기 5장 1~5절).


이처럼 뱀으로 인해 사람은 삶의 터전인 고향에서 쫓겨났으며 영원한 생명도 잃게 된


것이죠. 그러니 사람이 뱀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에덴동산의 이야기는 비유예요(마태복음 13장 34~35절).


그렇다면 에덴동산의 뱀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하늘의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요한계시록 12장 7~9절)


에덴동산의 비유 속 뱀은 다름 아닌, 사단 마귀예요. 하늘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전쟁을 일으킨 사단 마귀는 전쟁에 패해 결국 이 땅으로 쫓겨 내려왔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땅에 살고 있는 인류를 죄인이라고


하셧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태복음 9장 13절)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뱀의 간계로 하나님의 법을 어겨 그곳을 떠나야 했더


것처럼, 우리의 영혼 또한 사단의 꼬임에 빠져 하늘의 법을 어긴 죄로 이 땅 즉 영적


도피성인 지구로 쫓겨온 것이죠.


(누가복음 15장 4~7절, 누가복음 19장 10절, 로마서 6장 23절, 히브리서 11장 15~16절,


고린도후서 11장 2~3절).



사람의 DNA에 새겨진 뱀에 대한 공퐇, 그것은 하늘에서 이 땅으로 쫓겨 내려올 때에


각인된 것이 아닐까요?



<참고자료>

'다리 없는 뱀이 강하다', 동아사이언스, 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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